중이 제 머리 스스로 못 깎는다는 걸 저는 믿습니다. 정말 믿습니다.

· 기획자
2023/02/19
2023년 초 어느 날, 나는 회사 옆 자리 동료가 옆머리와 뒷머리를 스스로 바리깡으로 자른다는 말을 듣고 바리깡을 사버렸다. 대외적으로 최근 많이 오른 식료품, 난방비 물가에 맞서 지출을 줄인다는 명분도 있었지만, 사실 평소 머리카락 관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던 나로서는 미용실에 갈 때마다 들어가는 돈을 아껴보려는 얄팍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바리깡을 산다는 건 의외로 큰 결심이 필요했다. 영화 <아저씨>의 원빈처럼 삐딱하게 고개를 숙인 채 비장하게 바리깡을 돌려보려는 것까진 (진짜로) 아니었지만 나 혼자서 거울 보면서 양쪽 길이를 맞추는 것도 매우 힘들 것 같고 무엇보다 뒷머리는 안 보이는데 대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많았다. 친구들마저도 대체 바리깡을 왜 샀냐부터 시작해서 결국 파먹은 머리카락 정돈을 위해 미용실을 갈 수밖에 없을 거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생각해 보니 정말 어렵겠다 싶었다. 대체 왜 바리깡을 사버렸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돈 아껴보려는 얄팍한 마음이 살짝 더 강해서 주문 취소를 하지 않았다.

바리깡은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음날 바로 배송되었다. 평소라면 기분 좋게 택배 상자를 받았겠지만 왠지 모르게 바리깡은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받았다. 바리깡이란 물건은 이런 물건이었던 걸까? 근심과 걱정으로 택배 상자를 받아보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바리깡 주문할 것을 강력하게 추천해 본다.

오늘 머리를 감다가 옆으로 삐져나온 옆머리가 영 거슬렸다. 그리고 동시에 택배 상자를 뜯지도 않고 한동안 집에 고이 모셔만 두고 있던 바리깡을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담감에 잠깐 그냥 미용실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미 바리깡을 구입하느라 들어간 내 돈은 나를 바리깡으로 이끌었다. 젠장! 나는 돈의 노예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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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주식, 부동산, 소설, 미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일상 생활 이야기 쓰는 것도 좋아해서 다양한 분야를 마음 편히 써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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