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감추기 위해 입는다

뉴필로소퍼
뉴필로소퍼 인증된 계정 · 일상을 철학하다
2023/02/02
1990년대 미술 편집자로 일한 나는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영국에 들른 보드리야르의 일정이 잠시 비는 날, 그를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그가 진정한 영국을 체험했으면 하는 약간의 호들갑과 과시욕에 그를 데리고 리츠 호텔로 차를 마시러 갔다. 그런데 그 위대한 철학자는 호텔 입구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보드리야르는 심히 불쾌해하며 시대착오적이고 불합리한 대우라고 항의했다. 상냥했던 처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분에 못 이겨 씩씩댔다. 넥타이 사건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였다. 보드리야르는 넥타이를 매지 않아 거절당한 것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장 보드리야르는 어떤 경우에도 넥타이를 매지 않는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넥타이로 인해 그의 내면과 외면 사이에 간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티셔츠, 스웨터, 넥타이 없는 셔츠, 스웨트셔츠, 가끔 두르는 스카프 등은 자유를 사랑하고 지성이 번뜩이는 그의 자아상과 어울렸다. 그러나 넥타이는 아니었다. 획일성에 반대했던 보드리야르는 호텔에 입장하려면 직원의 넥타이라도 빌려서 매라는 말에 더욱 분개했다. 그는 나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페이스트리를 먹으며 현실의 환상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내 못마땅하게 넥타이를 잡아끌었다. 꼭 올가미에 걸린 사람처럼 불편해 보였다.
일러스트: 아이다 노보아 & 카를로스 이건
나는 여러 자리에서 이 일화를 이야기했다. 기표의 공허함을 주장하던 보드리야르가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에서도 관심이 갔다. 유독 어떤 사람들은 옷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고 소속감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이를테면 그들은 도시 직장인답게, 유행에 민감한 패셔니스타답게, 혹은 유행을 경멸하는 보헤미안답게 옷을 입는 것에 신경을 쓴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내보이는 것을 더 선호한다. 버락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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