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말의 수리대전쟁3
2024/09/04
지난 줄거리: 프린터와 전동 칫솔을 수리했다고 생각했지만, 프린터가 다시 반응이 없음.
나 원 참. 7월 말에 잡다한 물건들이 고장나서 수리한 얘기를 9월까지 쓰게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무튼 프린터가 아예 켜지지 않게 된 것은 그동안 경험해본 적이 없는 충격적인 고장이었다. 인쇄가 잘 되지 않는 증상은 그동안 수도 없이 겪었고, 그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고 좌절하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어떻게든 극복해왔다. 만화방에서 도입한 서비스를 이용해서 잉크를 리필하기도 했고, 리필 세트를 사서 드릴로 카트리지를 뚫고 주사기로 잉크를 주입하기도 했다. 프린트와는 상관이 없지만 스캐너를 뜯어서 정렬을 다시 한 적도 있을 정도다. 그런 와중에도 프린터가 아예 켜지지 않게 된 적은 없었다.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 비유하자면 특별한 자격 없이 경험만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치료하던 노인이 어느날 자기가 치료했던 사람이 혼수상태가 된 모습을 목도한 셈이다. 결국 올 게 오고 만 것인가. 어쩌면 내가 미뤄온 죗값의 고지서가 한번에 날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물건이 고장났으면 원인은 알아보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 아니, 원칙이라고 하면 너무 과장인 것 같으니 정정하자. 그게 나의 자연스러운 행동 방식이다. 인간 심리에 관심이 많은 자가 슬픔의 원인을 찾고 요리에 관심이 많은 자가 맛있는 음식의 비결을 찾듯이, 고장난 물건을 보면 이유 정도는 알고 싶어지는 게 나의 성미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며 프린터 플러그를 빼고 몇 시간 기다렸다가 다시 끼우기를 반복했다. 내부의 전류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증상이 개선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을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번을 해도 별반 소용이 없었다. 다이얼을 돌리는 브라운관 TV를 다루듯이 두어 번 패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하등 쓸모없는 짓이라 그만두었다. 설령 효과가 있다고 해도 그건 우연히 접촉면이 움직이는 등의 임시방편이지 근본적인 원인 규명과 해결은 될 수 없었으리라.
결국 프린터를 뜯지 않을 수가 없는 ...
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