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어놓고 말해보자면] 진보적인 학자는 어떻게 체제친화적으로 변모하는가? - 윤평중 비판

윤평중 선생 출처 : https://shindonga.donga.com/3/all/13/1930336/1
윤평중 선생이 또 페친 신청을 했다. 몇번째인지.. 어떤 비판을 해도 답하지 않는 사람이 페친 신청은 왜 매번 꼬박꼬박 하는지 모르겠다. 지윤평 연재 시리즈 중 하나로 윤평중을 사례 삼아 '진보적 지식인은 어떻게 체제에 협력하게 되는가?'라는 글을 적어놓기는 했다. 내게는 그가 나름대로 중요한 사례이다. 그가 벌인 강준만과의 논쟁이 지식인과 언론매체에 대한 나의 생각의 많은 부분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 올리는 이유는.. 시시하게 느껴져서.. 그에 대한 나의 관심이 점차 식어버리고 있다.

윤평중은 <하버마스와 푸코를 넘어서>라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근대적 계몽기획과 푸코 등의 근대비판을 종합하는 연구를 행했다. 한 손에는 근대적 합리성을, 다른 한 손에는 근대비판을 들고 담론적 개입으로서의 실천을 행하며 한국 사회를 비평하는 게 그의 입장이다. 그의 담론적 실천이란 대부분 이런 맥락에서 좌파적 이론들이 근대의 합리성, 계몽 등의 기획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그 반대편에 대해서는 근대비판이 지닌 합리성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것들이었다. 근대적 합리성의 계몽기획과 그것의 한계를 동시적으로 보며 실천을 이어가려는 자신의 시도를 그는 '담론철학'이라 명명한다.

나는 그가 꽤나 '일관적'인 사람이라 본다. 그의 연구(?)들 대부분이 다 이런 입장의 연장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장의 철학>이라는 책에서 그는 시장이 지닌 한계, 예컨대 신자유주의적 폭력, 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시장'의 전부라 보지 않는다. 시장이 지닌 어떤 합리성, 계몽의 기획이 있고 그것이 시장경제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속시키는 동인이라 주장한다. 레닌적 표현을 빌리자면 "자본주의의 문명화 작용"도 놓쳐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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