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생님은 채식주의자] 나는 오래 살고 싶은 돼지입니다

제비 · 대안을 찾고 싶은 인간
2023/05/23

 2020년 여름, 난생 처음으로 고기가 아닌 돼지를 만났다. 

 새벽 꼬리를 양 옆으로 휘휘 흔들며 감정을 표현했다. 지푸라기를 부지런히 침실로 물어 옮기고 다듬어 자신이 원하는 형태와 푹신함을 갖춘 침대를 만들었다. 해마다 입맛이 조금씩 바뀌어 좋아하던 음식을 싫어하기도, 싫어하던 음식을 좋아하기도 했으며, 날이 덥다고 느껴질 때면 시원한 진흙물 속에 들어가 만족스럽게 몸을 뉘여 체온을 낮추는 지혜가 있었다. 그는 흥미를 돋우는 새로운 놀잇감과 음식을 즐겼으며, 엄청난 근육질의 코로 땅을 파고, 나는 들지도 못 할 거대한 돌을 들어내는 취미이자 장기가 있었다.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확실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위협해서 쫓아내 버리는 한편, 친한 사람에게는 배를 긁게 해 주었다. 기분이 좋으면 누워 있는 사람을 코로 굴리며 장난을 치거나 몸에 붙은 진드기를 떼도록 허락해주기도 했다. 그게 돼지였다. 

공장식 축산 시스템 속에서 고기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돼지들에게는 고작 6개월의 삶이 주어진다. 자연 상태에서 돼지의 수명이 15년 정도임을 감안하면, 30분의 1, 즉 인간으로 치환했을 때 만 3~4살까지 살고 도살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지금 새벽은 네 번째 봄을 맞이하였으며, 큰 변수가 없다면 앞으로도 여러 번의 봄을 더 맞으며 살아갈 것이다. 새벽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출처: 새벽이생추어리 인스타그램
 ‘생츄어리(Animal Sanctuary)’는 (비인간)동물이 인간이 설정해 둔 목적과 그에 따른 착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장소를 일컫는 개념이다. 거주 동물의 수나 규모에 상관 없이, 그들의 행복과 안전이 우선시되며 습성에 맞게 ‘나이들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공간이라면 생츄어리라고 할 수 있다. 새벽은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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