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군대 이야기(13)피할 수 없던 사역들
군대에서 자신이 맡은 직무나 불침번, 보초, 일직, 당직 등 정규적인 일을 근무라고 말하지만, 갑자기 폭설로 부대 제설작업을 한다든가 내무반 주변 청소도랑 공사, 김장 등 단체 생활에 필요한 비정규적인 일을 하기 위하여 차출되어하는 일을 사역이라고 불렀다.
일요일이나 휴일에는 보초나 불침번 근무 외에는 다른 근무가 없어서, 당연히 외출을 나가거나 밀린 빨래를 하거나 편지를 쓰면서 쉴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온전히 쉴 수 있던 고참병과 달리 졸병은 여전히 내무반 고참병들의 지시로 내무반의 이런저런 잡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무반에서 잠시 쉬다가도 “내무반 외곽 청소 사역 10명 집합!”, “가지치기 사역 5명 집합!” 등등 본부대 선임하사의 지시에 따라 사역병을 모으는 소리가 들려오면 졸병 순으로 지체 없이 통일화 끈을 묶어 신고 뛰어나가야 했다.
사역의 종류는 다양하였지만, 청소나 가지치기뿐 아니라 물길 도랑 공사, 진지 보강 공사 등 대부분 막노동이었다. 계절에 따라서 늦가을에는 싸리비 만들기 사역도 있었고, 초겨울에는 동기 대비 난방 보강 작업 그리고 김장 사역도 하여야 했다. 특히 우기나, 혹서기 또는 혹한기 사역에는 나가기가 싫어서 다른 짓을 하느라 못들은 채도 해봤지만, 건재 순에 따라서 내 순서가 되면 영락없이 고참의 불호령 소리를 듣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일요일 사역을 피하는 방법은 몇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누군가의 면회를 받아 외출증을 끊어 영외로 나가는 방법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영내 교회 예배나 불교 예불 참가 집합에 손을 들고 종교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물론, 부상이나 병으로 의무실에 입실해있는 경우도 사역이 면제되었다.
군대 생활 중 아쉽게도 면회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수시로 군단장 명의의 지휘봉, 상패, 라이터 등을 제작해 수령해오는 서울 출장이 빈번하여 구태여 집에서 군대로 면회를 와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깊이 사귄 여자 친구가 있었다면 면회를 올 수도 있었겠으나, 내가 알던 여자들은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