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야마 지준 - 우리가 당황한 한국사
2024/03/16
무라야마 지준.
식민지 조선에 와서 조선의 민간 풍속에 대해서 연구를 한 사람이다.
1891년생으로 일련종 산하 절에서 컸다. 1919년 일본도쿄제국대학을 졸업했다. 철학과(사회학 전공)이었다. 이 무렵 아직 학문이 분화되지 않아 사회학인데 학부의 학과는 철학과였던 모양이다.
졸업하자마자 조선총독부의 촉탁이 되어 현해탄을 건넜다. 조선 사회에 대한 여러 조사를 하고 총 11권의 보고서를 만들었다.
23년간 조선에 체류했다. 1941년 일본으로 돌아갔고, 조선장학회(일본 유학생을 관리 감독하는 기관)에 근무했다. 1945년에 자신이 자란 절 묘코지(妙広寺)의 주지가 되었다. 1968년에 77세로 사망했다.
그가 1919년에 조선에 온 것은 3.1운동의 영향이었을 것이라 보고들 있다. 억압만으로 조선을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이 조선의 문화와 풍속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한 것이다.
당연히 무라야마 지준 한 사람이 아니라 각 분야별로 여러 사람들이 조선에 대한 연구에 돌입했다. 조선민속학의 개척자라는 이마무라 도모에, 와세다 출신의 젠쇼 에이스케, 경성제대 교수 아키바 다카시 등등.
무라야마 지준은 1923년 <조선사회제도사> 보고서를 시작으로,
<풍수에 대하여>(1923),
<조선의 독립사상 및 운동>(1924),
<내선문제에 관한 조선인의 목소리>(1925),
<조선의 군중>(1926),
<조선의 복장>(1927),
<조선인의 사상과 성격>(1927),
<조선의 습속>(1928),
<조선의 귀신>(1929),
<조선의 풍수>(1931),
<조선의 무격>(1932),
<조선의 점복과 예언>(1933),
<민간신앙과 범죄대책>(1933),
<조선의 유사종교>(1935),
<부락제>(1937),
<석존·기우·안택>(...
식민지 조선에 와서 조선의 민간 풍속에 대해서 연구를 한 사람이다.
1891년생으로 일련종 산하 절에서 컸다. 1919년 일본도쿄제국대학을 졸업했다. 철학과(사회학 전공)이었다. 이 무렵 아직 학문이 분화되지 않아 사회학인데 학부의 학과는 철학과였던 모양이다.
졸업하자마자 조선총독부의 촉탁이 되어 현해탄을 건넜다. 조선 사회에 대한 여러 조사를 하고 총 11권의 보고서를 만들었다.
23년간 조선에 체류했다. 1941년 일본으로 돌아갔고, 조선장학회(일본 유학생을 관리 감독하는 기관)에 근무했다. 1945년에 자신이 자란 절 묘코지(妙広寺)의 주지가 되었다. 1968년에 77세로 사망했다.
그가 1919년에 조선에 온 것은 3.1운동의 영향이었을 것이라 보고들 있다. 억압만으로 조선을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이 조선의 문화와 풍속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한 것이다.
당연히 무라야마 지준 한 사람이 아니라 각 분야별로 여러 사람들이 조선에 대한 연구에 돌입했다. 조선민속학의 개척자라는 이마무라 도모에, 와세다 출신의 젠쇼 에이스케, 경성제대 교수 아키바 다카시 등등.
무라야마 지준은 1923년 <조선사회제도사> 보고서를 시작으로,
<풍수에 대하여>(1923),
<조선의 독립사상 및 운동>(1924),
<내선문제에 관한 조선인의 목소리>(1925),
<조선의 군중>(1926),
<조선의 복장>(1927),
<조선인의 사상과 성격>(1927),
<조선의 습속>(1928),
<조선의 귀신>(1929),
<조선의 풍수>(1931),
<조선의 무격>(1932),
<조선의 점복과 예언>(1933),
<민간신앙과 범죄대책>(1933),
<조선의 유사종교>(1935),
<부락제>(1937),
<석존·기우·안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