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유통기한, 중경삼림

교실밖
교실밖 · 읽고 쓰고 걷는 사람
2024/04/10
당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왕가위 감독, 스타일을 연기로 구현하는 배우들, 그리고 1990년대 홍콩이라는 공간에서 거짓말 같은 사랑과, 거짓말 같은 이별의 이야기가 특별한 색감의 '스텝 프린팅(step printing)' 기법 안으로 들어온다. 같은 프레임을 복사하여 잔상 효과를 극대화하는 스텝 프린팅은 왕가위 특유의 도시 감성을 그린다. 영화 속 시간을 섞어서 찰나적 과거와 현재를 무심하게 재현하는 이 기법은 보는 이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데, 빌딩 숲 아래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 복잡하게 숨 쉬는 홍콩이라는 도시와 가장 잘 어울린다.
영화 중경삼림의 금성무
연인들에게 '생일'은 사랑의 계기이다. 경찰 223(금성무)의 생일은 스스로 설정한 사랑의 유통기한이다. 5월 1일로 유통기한이 설정돼 있는 파인애플 통조림을 골라 먹으며 실연을 곱씹는다. 생일까지는 재회할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도 연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유통기한이 박혀있는 파인애플 통조림과 떠나간 연인에 대한 미련이 쓸쓸하게 교차한다. 이런 장면들은 연인들 사이에서 생일을 계기 삼아 추억을 만들었던 보통의 남녀들이 느꼈을 그것과 흡사하다. 맞아. 나도 그랬었지. 그날은 내 생일이었어. 여기에 의도적으로 배치한 소품과 장면이 분위기를 더 쓸쓸하게 몰고 간다. 5월 1일이 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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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고민한다. 몇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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