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는 내가 고칠 수 없어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12/27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에는 주인공이 낡은 자전거를 열심히 수리하는 장면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요양 혹은 수양의 과정으로 그려졌다. 나는 하루키가 일상의 잡다한 일을 처리하는 과정을 묘사한 것을 좋아해서 이 장면도 아주 흥미롭게 봤는데, 자전거 수리가 볼 때만 고요하고 아름다운 일이지 실제로 해보면 쌍소리가 절로 나오는 짓이라는 사실을 근래에 들어 알게 되었다.

작년부터 나는 자전거의 내구도를 상당히 빠른 속도로 소모하고 있다. 칼로리 소비를 전적으로 자전거에 맡기고 있는 데다 딱히 주의깊게 타는 버릇도 없는 탓이다. 자전거 주행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지켜보면 암릉에서 스니커즈 신은 사람을 발견한 산꾼처럼 노발대발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하여 당연하게도 브레이크가 차츰 듣지 않게되었다. 뒷바퀴 브레이크 패드가 심하게 닳아버린 탓이다. 뒷바퀴만 먼저 마모된 것은 아마 내가 오른손잡이라 멈출 때마다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쥔 탓이 아닐까 싶다. 신경을 타고 작동하는 반사적인 신체습관이 오른손으로부터 와이어를 따라 뒷바퀴까지 전달되어 마모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달리는 동안 자전거는 인체의 일부가 된다는 말이 과연 그럴듯하다.

각설하고 브레이크는 어떤 이동수단에서든 가장 중요한 부분인 터라 빠른 시일 안에 손을 봐야 했는데, 나는 천하에 게을러 빠진 인간답게 작업을 차일피일 미뤘다. 브레이크가 전혀 듣지 않는 것은 아니었고, 브레이크를 잡을 때면 왼손을 더 강하게 잡는 연습을 시작했으므로 사고가 날 위험까지는 없었던 탓이다. 게다가 교체에 쓸 부품도 없었을 뿐더러 새로 사고 싶지도 않았다. 고작 브레이크 패드 두 개 사는 데에 택배비를 지불하기 싫다는, 현대 한국 소비자가 느끼는 보편적 고집이 작용해서 도저히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전거포에 가자니 가까운 곳은 다 망해서 은근히 귀찮은 거리를 평소에 다니지 않는 방향으로 달려야 한다는 것도 심한 문제로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가장 먼저 시도한 일은 마모된 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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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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