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녀> - 약자의 생존전략

김다움
김다움 · 게을러요
2024/02/19
2010년대 중후반은 뜨거웠다. 2016년엔 '페미니즘 리부트'와 『82년생 김지영』이, 2018년엔 미투운동과 혜화역 시위가 있었다. 시대의 화두는 페미니즘이 됐고, 지금까지 '젠더 갈등'이란 오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운동은 파편화됐고, 개인화됐으며, 조용해졌다. 문장이 "여자는"이나 "오빠는"으로 시작한다면 불편하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는다. 그저 '믿고 거른다'. 그리고 자기 검열한다. 나는 앞으로 그런 말을 쓰지 않겠다고. 마무리는 커뮤니티다. 비슷한 사람이 모인 공간에 불평불만을 공유한다. 반대편도 비슷하다. '너 페미야?' 하며 따지듯 묻는 사람은 줄었다. 그저 이런저런 상징을 찾아내 '과학'(싸이언스)적으로 '믿거'할 뿐이다. 손가락을 찾든, 트위터를 뒤지든, 아무튼 '과학 수사'를 통해서.

그러니 젠더 갈등은 부정확하다. 지금은 젠더 냉전이다. 적어도 운동이 뜨거웠을 땐 논란이라도 가능했다. 지금은 공론장을 기대하기 힘들다. 여기엔 이런저런 원인이 있겠지만, 하나의 중요한 원인은 지나치게 과열된 논쟁(?)으로 인한 피로감이다. 우린 침착하게 문제를 따져보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주장과 주장이 부딪치는 사이 워마드와 디씨가 돌출해 진흙탕을 만들었다. 그러나 뜨거운 감자는 진흙탕이 아닌 식탁에서 식혀야 한다.
광화문시네마, 모토
<소공녀>는 도발적이다. 2017년에 등장해 침착한 시선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감자를 식히기 위해 판단을 유보한단 말이다. 도입부엔 의미심장한 장면이 있다. 미소와 재경이 헤어질 때, 카메라는 고정돼 있다. 화면 밖으로 인물이 나아가는 방식으로 이별을 표현한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재경은 털썩하며 눕는데, 카메라 각도가 높아 재경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공중에서 떨어지듯, 혹은 쓰러지듯 연출한다. 관객은 불안해진다. 그러나 재경은 명백하게 살아 있고, 음악은 경쾌하다. 귀여운 대화도 오간다. 모순적인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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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언론을 전공하는데, 그다지 전문적이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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