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후행동은 왜 이토록 왜소할까?-네 가지 이유
2023/10/17
한국의 기후대응 행동은 사실 보잘 것없기만 하다. 기후위기가 진짜 우리의 문제라고 우려하는 사회적 목소리는 결코 적지 않지만, 기후위기에 진지하게 대처하는 행동은 국가/지자체 차원에서도, 시민사회 차원에서도 그 효과가 적이 의문스러운 수준에 머물고 있다.
쏟아지는 위험 경고와 미미한 행동 간의 이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거대한 틈은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까? 크게 네 가지가 원인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우선, 과학과 실감 간의 간극이라는 전 세계인에게 공통되는 사안이 있다. 과학적 지식을 통해 이해하게 되는 기후변화의 현실은 오직 기후충격을 통해서만 우리 인간에게 실감된다. 문제는 홍수, 호우, 산불, 태풍 같은 기후충격이 (시공간적으로) 간헐적으로만 경험된다는 점이다. 누구도 언제나 기후충격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또 어디서나 기후충격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이곳에서 발생한 지난 여름의 수해는 몇 개월이면 까맣게 잊히고, 현재 발생 중인 기후재난은 한국 밖 다른 나라의 일이기 쉽다. 이러한 시공간적 간헐성 탓에 우리의 실감은 쉽게 허물어지고, 충격을 받았을 때 가까워졌던 과학과 실감의 거리는 다시금 벌어지고 만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보다 쉽게 일어나는데, 그건 한반도가 오랫동안 기후충격의 사각지대나 다름 없는 지역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2018년 50일 폭염 이후 기후변화를 실감하는 이들이 꽤 늘었지만,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이 수해(태풍, 홍수)로 고통받는 동안에도 한국만은 기이하게 안전한 쪽이었고 산불 피해 규모 역시 상대적으로 소소한 수준이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다행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피해가 적으니 천만다행이지만, 현 세대의 탄소 감각을 무디게 하니 미래세대로서는 불행 중 불행이다.
둘째, 인간 뇌의 특정 성향이 문제다. 정보처리이론(Information Processing Theory)에 의하면, 우리의 뇌는 반복된 자극/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없는 경우, 그 자극/문제를 무시...
지구철학. 탈성장 생태전환. 포스트휴먼 문학 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행동사전>(공저)
<불타는 지구를 그림이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걸으면 해결된다>(공저)
<숲의 즐거움>
<동물 미술관>
<철학이 있는 도시>
<낱말의 우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