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아들의 교회 탈출기 (1)

이화경
이화경 · 프리랜서 작가
2024/04/15

1. 첫 장면

왜 갑자기 그 장면이 떠올랐을까.  

목사 고시 마지막 날, 면접관이 '추구하는 교회상'을 물었을 때 중년의 남 집사가 교회 목사관 안에서 식칼 휘두르며 날뛰던 장면이 왜 갑자기 떠오른 걸까. 이미 오래 전에 잊힌 일이었다. 성인이 된 후부턴 단 한 번도 끄집어 낸 적 없던 기억이다. 면접을 겨우 끝내고 나와 당시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몇몇 장면들만 단편적으로 떠오를 뿐 앞뒤 맥락이나 디테일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그날의 일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주말에 엄마를 찾아 가 물었다. 어떤 상황이었느냐고. 엄마에게 전해들은 당시 상황은 내 기억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서범필(그 집사의 이름이다)이 처음부터 칼을 품고 온 건 아니었다. 담임목사였던 내 아버지를 보며 고래고래 윽박지르다가 갑자기 주방으로 가더니 식칼을 꺼내 들고 와서는 아버지를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하더란다. 이에 아버지가 배를 내밀며 
“그래, 찔러라, 찔러!” 
이래 버렸단다. 아버지도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맞불을 놔 버린 거다. 죽일 테면 죽이라는 아버지의 의연한 태도에 당황한 범필이가 화를 이기지 못하고 애먼 안방 문만 칼로 미친 듯이 그어대더란다. 내가 방에서 나온 건 그때였다. 문 부서지는 소리에 뭔가 큰 일이 났구나 싶어 밖으로 나온 거다. (서범필이 들이닥친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는 나부터 챙겼다. 나오랄 때까진 절대로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내 방문을 닫았던 게 기억난다) 내가 나오자 악에 바친 범필이가 웃통을 벗더니 자기 몸을 쓱쓱 그어대며 증오에 찬 소리들을 내뱉고 있었다. 듣도 보도 못한 생경한 욕이 마구 쏟아졌고,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람에게서 저런 소리가 나올 수 있구나 처음 알았다. 피가 줄줄 떨어졌고 거실 곳곳에 핏자국이 질펀하게 찍혔다. 함께 있던 장로들과 집사들이 달려 들어 뜯어 말린 끝에 상황은 간신히 종료됐다. 아버지와 엄마는 넋이 나가 버렸고, 다른 어른들은 사태 수습하느라 정신없었다. 상황에 압도된 나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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