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의 멘탈 호신술 -3-

저번 시간 글을 아주 짧게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인간은 결코 돈을 이성적으로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약장수 속임수도 많고 호구 낚이는 사람도 많다. 여기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입니다. 적은 돈을 잘 쓰려면 먼저 우리의 본능을 인정하고, 본능에 완전히 반대되는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저번 편에선 설명만 줄줄 늘어놓다 떠났으니 이제 답안지를 깔 시간이군요. 제가 얼룩소에서 쓰는 글은 시리즈는 이로써 마지막이나, 언젠간 창고에서 꺼내 괜찮은 아이템으로 만들어 보려 합니다. 그럼 시작~ 하겠습니다!
참고 서적 : 얘네들
1) 상대성의 함정 : 백분율에 속지 마세요!
 
시작부터 또니얼 카너먼과 또머스 트버스키를 소환해봅시다. 이들의 연구 사례 중 하난데요. 여러분은 (주)얼룩소라는 회사에 최종합격하였습니다. 첫 출근을 위해 오늘 두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첫째로 새 펜을 사야 합니다. 대표님이 필체에 진심이신 편이거든요. 둘째, 회사에 입고 갈 정장 한 벌을 사야 합니다. 이런, 듣자하니 IT 기업 같은데 어째 엄청 올드하네요. 아무튼 사무용품점에서 2만 8천원짜리 괜찮은 펜을 찾았습니다. 근데 딱 사려고 하니까 15분 거리에 있는 다른 상점에서 똑같은 걸 2만원에 파는 게 기억났네요. 이 경우 8천원을 아끼기 위해 15분을 돌아가시겠습니까? 대답은 잠깐 뒤로 해두지요. 그 다음 정장을 사러 갑니다. 양복점에서 적당히 세련된 정장 세트를 50만원에 파는 걸 발견했습니다. 근데 이것도 생각해보니 15분 거리의 다른 매장에서 49만 2천원에 파네요. 이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상하신 분들이 많겠지만 펜의 경우 돌아가는 경우가 대다수인 반면. 정장은 굳이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절약되는 금액은 똑같이 8천원인데 말이지요. 사실 이거. 저 같아도 대다수의 선택을 따라갔을 겁니다. 우리는 늘 상대적인 비교를 하면서 살거든요. 제가 커뮤니티 돌면서 좀 흥미롭게 봤던 부분인데요. 지방 사람 입장에선 서울에 아파트 있으면 빼박 부잔데, 서울 안에선 자기들끼리 거주 구와 아파트 브랜드로 급을 나누더라구요. 부의 상대성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었죠. 다시 윗 주제로 돌아가자면, 펜은 거진 30퍼센트 할인을 해주는 반면. 정장의 할인률은 2퍼센트도 안 됩니다. 여기서 힌트 하나가 나왔군요. 우리는 머릿속에 소비를 백분율로 사고하는 틀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만 원짜리 커피 10퍼센트 할인권은 죽어라 챙기면서, 십만 원짜리 신발 1퍼센트 할인권을 보면 코웃음 치지요. 좀 힘들지만 이 틀을 깨야 합니다. 건조하게 실제 금액만 놓고 비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엔 백분율로 장난치는 장사꾼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보기만 해도 어질어질 해진다......

2) 심리 계좌의 함정에서 빠져 나오는 법 : 모든 돈을 똑같이 바라보기

 심리 계좌의 본질은 ‘돈이라고 다 같은 돈이 아닌’ 곳에서 시작합니다. 울 부모님 세대들이 늘 하시던 말씀이 “뜬돈은 얼른 써야지, 주머니 넣어두면 재수 옴 붙는다.” 였습니다. 저는 주로 토토하는 친구들한테서 이런 모습을 많이 봤는데요. 어쩌다가 돈을 따면 정말 흥청망청 쓰고 말더라구요. 거따 밀어 넣은 돈은 힘겹게 일해서 벌었으면서 말이죠. 반대로 반드시 써야할 돈은 또 그렇게 아낍니다. 쓸 때 너무 아까워서 아예 미뤄버리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이건 3금융 대출 회사에서 일하는 지인의 피셜인데요. 소액 대출일수록 오히려 원금은 안 갚고 이자만 내는 비율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심지어 3년 넘게 안 갚아서 원금을 돌파한 경우도 꽤 많다고 하더군요. 소액 대출은 99.9% 가난한 사람들이 찾는 상품인 걸 감안하면 합리와 완벽하게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셈입니다. 당시엔 비웃고 말았는데, 저 자신이 빚쟁이가 되어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자’는 심리 계좌에 들어있는 항목이었지만, ‘원금 상환’이란 항목으로 들어가면 지불이 무척 괴로워집니다. (손실 회피) ‘평생 이자만 내면 안 갚아도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인지부조화가 올 정도로요.

우린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계속 구분하고 격리합니다. 식사비 얼마, 부조금 얼마, 취미 생활 얼마, 이렇게 예산을 짭니다. 물론 이렇게 구분 지으면 유용한 부분도 있어요. 하나하나 개별 항목 평가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소비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일도 엄연한 시간이고 비용인 만큼 절약의 한 방식이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아주 단순한 전제를 잊으시면 안 됩니다. 돈은 얼마든지 다른 돈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점을요. 뜬돈이라는 건 없습니다. 얼룩커 여러분 중에선 필시, 상당수가, 얼룩커 픽으로 번 돈, 에디터 픽으로 번 돈을 일상유지와 다른 방식으로 쓰셨을 겁니다. 못 샀던 물건을 사거나 비싼 술을 마셔보거나 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기본적으로 인간은 ‘내 재산+(부수익-소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거 틀린 공식입니다. 진실은 ‘내 재산-소비’입니다. 이것만 기억하셔도 엉뚱한 곳에 돈 쓸 일이 상당수 줄어들 겁니다.
13월의 월급 같은 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쓴 거 돌려 주는 거예요!
3) 지출의 고통 : 자제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면 강제로
 
사실 이 항목 하나만 잘 지켜도 나머지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지출의 고통이야말로 멘탈 호신술을 이해하는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절대! 무조건!! 미래의 돈을 현재의 돈보다 낮게 평가합니다. 그렇기에 저축보다는 소비를 택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 소비는 넘나 즐거운데 지출은 넘나 괴롭습니다! 비유하자면 썩은 이를 빼내는 건 너무 행복하지만, 발치 과정이 죽도록 무섭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모든 장사꾼들은 소비의 쾌감을 극대화하고 지출의 고통을 최소화하려 온갖 방식을 다 씁니다. 지문인식 한 방으로 결제가 되는 시스템은 그야말로 궁극의 고통 치료법입니다. 지출의 순간을 아주 짧게 줄여주니까요.
 
 인간의 본성을 두고 자제력 기르라는 말은 아주 잔인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무책임한 얘기죠. 자제력을 기르라니. 무슨 떨어지는 폭포수 아래서 좌선이라도 해야 될 것 같잖아요. 현실적으로 봤을 때, 충동구매가 잦아 걱정이라면 소비의 즐거움보다 지출의 고통을 키워야 합니다. 소비 과정을 번거롭게 하고 결과는 뼛속 깊숙하게 들어오게 만들어야 해요. 여러분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트로이 전쟁을 끝낸 후 오디세우스는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10년 간 조뺑이 항해를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세이렌의 전설도 알게 되었지요. 아름다운 반인반조 세이렌의 노래를 듣게 된 인간은 바다로 뛰어들게 됩니다. 이때 오디세우스는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기는 몸을 돛대에 꽁꽁 묶어놨습니다. 자유의지를 스스로 박탈한 거죠.
해석에 따라 인어로 각색되기도 하는데, 암만 봐도 노래보단 얼굴 보고 뛰어드는 매커니즘 같다.

자제력을 발휘할 수 없다면 아예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간편 결제 등록을 취소하고, 휴대폰 소액 결제를 막아버리고, 신용 카드도 카드사에 전화해서 분실 처리시키는 겁니다. 체크카드에 다달이 정해진 생활비만 딱 집어넣은 채로 알림설정을 해놓고, 보너스나 상여금은 받자마자 그대로 적금으로 집어넣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대답이 돌아오던데,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다. 충동구매야말로 큰돈으로 작은 행복을 사는 행위니까요. 

5) 닻 내림 : 본질은 고정관념, 더 가면 확증편향
 
첫인상이 중요하다. 세계 어딜 가나 통하는 준칙입니다. 그런데 이 첫인상을 중시한다는 말 속엔 골 때리는 기재가 들어있습니다. 첫인상은 오로지 스스로의 판단에 의존해 결정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자신에게 익숙한 정보 위주로 끌어다가 상대를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일단 이런 식으로 내린 판단은 데이터가 되어 두고두고 영향을 미칩니다. 외부 지식 없이 이러한 데이터만 계속 쌓이다 보면 종국엔 확증편향이 되어버리죠.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런 인간본성을 기가 막히게 꿰뚫고 있습니다. 비슷비슷한 영상만 계속 노출시키죠. 이제 본격 정치 계절이라 젊은 유망주들도 꽤 노출되는데, 경악할만한 사고구조를 가진 이들이 몇 명 보입니다. 저는 그들이 유튜브가 만든 괴물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닻 한 번 잘못 박았다가 심연까지 끌려간 거죠. 
 
닻 내림에 대한 처방은 각기 다릅니다. 카너먼은 닻과 반대되는 주장을 끊임없이 상기하라고 하고, 애리얼리는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라고 합니다. 근데 까보면 같은 소립니다. 본질은 자기를 계속 의심하라는 뜻이거든요. 그럼 바로 실전에 도입해봅시다. 여러분은 월급날만 되면 통장에서 자동이체로 돈이 줄줄 새어 나갈 겁니다. 출금으로 난도질당하고 남은 금액들 살펴보면 씁쓸하지만 늘 있던 일이죠. 근데 그 금액의 개별 항목을 한 번쯤 의심해본 적 없으신지요? 저는 오랫동안 통신료만 월 6만원에 보험료가 10만원 가까이 나갔습니다. 실제로 대부분 이 정도 내기 때문에 별 의심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알뜰폰 요금제와 보험 컨설팅을 알게 된 겁니다. 삶에 아무 변화 없이 달에 나가는 돈만 8만원 가까이 줄였습니다. 
 
이때부터 모든 소비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죠.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따라가는 게 아닐까. 대체제는 없을까. 하나하나 의심하고 바꿔 나가다 보니 삶의 만족도는 똑같은데 생활비만 획기적으로 줄었습니다. 새 거 대신 중고 책, 이월 의류, 리퍼브 제품, 유통기한 임박 음식(이건 대체로 택배비도 무료!)를 구매하게 됐죠. 찾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미리 검색어 링크 창에 띄워놓고 매일 새로고침 한 번만 누르면 됩니다. 혹시 이런 것들 사면 ‘짜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게 바로 닻 내림의 함정입니다! 사면 오히려 지구환경에 기여하는 겁니다. 새 책에 들어가는 종이. 내가 안 사면 폐기해야 할 제품들을 떠올려 보세요.
왼쪽 SK, 오른쪽 SK 알뜰폰. 요금 차이가 3배 가까이 난다.

3) 소유 효과 - 매몰 비용 오류 : 애착과 미련은 아닌지요.
 
저는 이 두 가지 기제를 온라인 게임으로 많이 경험했습니다. 전 남들이 겜돌이라고 하면 코웃음치는 진성 게임 폐인이었는데요. 기간만 해도 제 나이의 절반보다 더 많이 했지요. 리니지부터 해서 로스트 아크까지. 거의 20년 가까이 게임 세계에 있다 보면, 소유 효과에 매몰 비용 오류란 무엇인지 생생하게 경험합니다. 이미 재미없어진 게임을 계속 붙들고 있는 유저가 한 트럭이거든요. 저 역시 관성처럼 게임에 접속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른 돈이며 쓴 시간이 너무 아까웠지만, 무엇보다 열심히 키운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었거든요. 거기다 남아있는 유저들과 친분도 있어 스스로 의지로 게임을 접질 못했습니다.
 
 게임 쪽 용어로 ‘꼬접’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꼬와서 접는다.’, 주로 게임사에서 사고를 침으로써 유저가 빠져나가는 경우를 뜻합니다. 이때 보통 호갱 충성심 높은 유저가 빠져 나가므로 게임사 입장에선 매출에 핵폭탄 맞는 셈인데요. 제가 이 꼬접의 발생 동기를 한 번 쫓아가본 적 있습니다. 유저가 불만이 쌓이는 동기는 비슷비슷하지만 꼬접이 발생하는 결정적 사건은 정말 제각각입니다. 게임사의 끝도 없는 과금 유도라던가, 게임 내 확률 조작. 혹은 내부 비리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아예 게임 자체와 관련 없는 이슈로 대량 탈퇴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른바 ‘운영진 메갈 논란’으로 유저가 엄청 빠져 나간 클로저스가 대표 사례입니다.
이 사건 이후로 게임계는 페미니즘 이슈에 과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이게 사실 참 신기한 현상인데요. 몇 년 동안 붙들고 있던 게임을 정말 하찮은 이유로 접게 된 셈이거든요. 설령 운영진이 정말로 남성비하를 일삼았다한들. 게임하곤 일절관계가 없잖아요. 하도 이해가 안 갔는데 마침 그 사태로 ‘꼬접’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왜 접었느냐 물어보니 별 이유 없더군요. 그냥 ‘화가 나서’였습니다. 좀 더 캐물으니 ‘어차피 회수도 거의 안 되는 게임이고……’ 라더군요. 옳거니, 객관화가 이렇게 이루어지는구나!
 
흘린 물은 도로 못 담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부터 회수 안 될 장소에 돈을 투입하지 않는 겁니다만. 그게 말처럼 된다면 이런 용어가 안 나왔겠죠. 인터넷에선 매몰비용 오류 극복사례라면서 ‘주식 손절 방법’만 줄줄 나오던데요. 제가 생각해낸 해답은 이겁니다. 흘린 물이 안 아깝도록, 밑 빠진 독에다가 물 더 안 붓도록, 주의를 분산시키자. 제가 수년의 시간과 수백만 원의 금액을 꼬라박은 게임을 접은 계기가 참 묘한데요. 어느 날 회사가 엄청 바빠져서 잔업 특근을 엄청 많이 했어요. 한 세 달 정도 추가 근무 90시간 정도 찍혔죠. 게임에 복귀했더니 업데이트가 많이 되어서 제 순위가 한참 뒤처졌더랍니다. 순간 ‘이거 할 시간에 다른 거하면 더 좋겠다.’ 생각이 들었고 현자타임 그대로 접어버렸습니다. 위에 ‘꼬접’ 사례도 그렇듯. 어떠한 계기든 대상과 멀어지기만 하면 그때부턴 객관화가 가능해집니다. 객관화가 가능해지면 그때부터 돈과 시간을 갖다 붓지 않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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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소 프로젝트가 마감이라고 합니다. 사실 에디터 분들에겐 정말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여기저기 껴보려고 했으나, 없는 시간을 글 쓰는데 몰빵 하느라 정작 활동 자체를 거의 못 했네요. 저는 얼룩소가 약간의 진입장벽을 제외하면, 굉장히 이상적인 공론장을 구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그 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글을 쓰지 않았던 이들이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했지요. 호불호가 갈리는 오리지널 컨텐츠. 설거지론이며 기본소득 이야기 역시 격한 말없이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이 정도 분위기면 온라인에서도 유의미한 토론이 가능하지 않을까. 희망을 품게 됐습니다.
 
저는 글쟁이로서 노동/사회의 분야에만 갇히는 걸 늘 경계해왔으나 실천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얕게 아는 분야에 대해선 글을 못 쓰게 되더라구요. 하여 이 ‘멘탈 호신술’ 시리즈를 쓰기 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호응도가 좋았고, 저 역시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얼룩커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어디선가, 어느 때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