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를 건너는 우리의 자세 - 세월호 10주기를 맞으며

이효근
이효근 · 정신과 의사
2024/04/15
1.

해마다 4월 16일이 되면, 세상 곳곳에서 날 것의 슬픔이 피어오른다. 이 트라우마는 왜 이리도 짙은가. 세월호에서 가족을 잃은 것이 아닌 이들까지 왜 이리 오래 그 배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아려하는가.

2017년에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직접적인 이유는 물론 국정 문란이란 이름의 온갖 난맥 때문이었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그에게서 돌아서게 한 것은 세월호와 관련된 그의 행적 때문이었다.

심지어 최고 권력인 대통령을 몰아낼 정도로, 우리에게 세월호는 왜 이리 큰가. 나는 생각한다. 세월호의 트라우마는 트라우마 자체가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되풀이해 겪어온 트라우마의 재경험이기 때문에 이토록 깊고 크다고. 그래서 극복하기도 힘들다고.

2.

세월호 이전에 있었던, 이 땅의 수많은 집단 트라우마를 생각해본다. 불행히도 이 땅의 근대는 식민과 분단과 전쟁과 독재로 얼룩졌다.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가 부인되고, 정당한 요구가 짓밟혔다.

외세의 지배에 저항했던 이들의 집안은 보상을 받긴커녕 대부분 몰락했다. 이념으로 나라가 분단되면서 남북 양쪽에서 기본적인 사상의 자유는 인정되지 않았고, 기어이 벌어진 전쟁은 사상의 차이에 집단 학살로 답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양측의 권력에 저항했던 이들은 고문받고 살해당하고 실종되었다. 이 모든 것이, 피해 당사자, 그리고 숨죽이고 그 모습을 지켜본 다른 모든 관찰자들의 마음에 그대로 트라우마로 남았다.
 
이 땅의 어머니들은 자기 자식을 앉혀놓고 대를 이어가며 신신당부했다. 절대로 나서지 말아. 옳은 일인 줄 몰라서 말리는 게 아냐. 모난 돌이 정 맞는 거야. 억울해도 참고 가만히 있어. 그게 살 길이야. 어미 말 알지? 절대 어미 가슴에 못 박으면 안돼. 그냥 네 할 일 하면서 눈 돌리고 귀 막고 살아. 네 자식 키우며 조용히 살아.

그렇게 일제 강점기를 보낸 이의 자식이, 전쟁을 겪으며 다시 부모가 되어 자기 자식의 손을 잡고 똑같은 당부를 전했다. 세월이 지나 그 자식도 부모가 되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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