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혐오 범죄를 보고 힘들어하는 나를 위한 발췌

홈은
홈은 · 15년차 집돌이
2022/09/22

운 좋게도 여자라서 내 경력이 가로막힌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불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불리함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이 운 좋게 성공을 거두었을 뿐이다. 차별로부터 비교적 안전했으니, 차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유리한 일이었을 것이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나의 이런 안전한 무지를 찢은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이 보도되고 소비되는 방식이었다. 처음에 뉴스에서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공포심을 조금 느끼는 정도였다. 술자리에 있다가 남녀공용 화장실에 가는 것은 내 일상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뉴스를 접하면 운전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피해자가 '화장실녀'로 불리고 '여자가 무시해서'라는 가해자의 진술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을 보면서, 그제야 비로소 내 안전에 대한 감각이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불운 이후에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화장실녀'로 불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SNS에서 어떤 젊은 여성이 "내가 저런 식으로 혹시 죽게 되거든, 그래서 XX녀로 불리게 되거든, 가족들에게 반드시 사자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끝까지 싸우라고 전해달라"라고 쓴 것을 보았을 때는 툭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러니까 어떤 여성들은 불운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 죽어서조차 조롱의 대상이 되어 소비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또 다른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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