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의 얼굴

도시의 계절
도시의 계절 · 도시의 절기에 관한 에세이
2022/06/07
진리의 우수, 눈이 녹고 비가 내리다.

 타투를 했다. 부처의 손과 얼굴을 몸에 새겼다. 인자한 얼굴을 한 나의 부처가 취하고 있는 손 모양은 카라나 무드라. 오른손은 검지와 새끼를 편 상태에서 나머지 손가락은 모두 접은 채 앞을 향하고, 왼손은 모두 펼쳐 그 아래에 두고 있다. 두려움과 불안과 우울 같은, 그러니까 ‘악’을 떨쳐내는 수행의 동작이라고 했다. 악은 우리를 괴롭히는 고통이나 번뇌로 다시 해석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5년 전 태국을 여행한 적이 있다. 지구 반대편의 낯선 땅에서 몇 달을 보내고 잔뜩 위축되었던 때였다. 방콕에 도착하고서야 내 여행에 조금씩 활력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어딜 가나 여행객을 환대해주는 태국 사람들 덕분이었다. 어느 날은 오렌지색 법의를 입은 승려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노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걸 보았다. 세속과 거리를 두는 것이 승려가 아니었나? 무엇을 팔고 있는지 보니 작은 불상이 담긴 팬던트였다. 길목 어디나 작은 불상을 조각하고 판매하는 노점상이 많았다. 태국 사람들은 길을 걷다가 마음을 끄는 팬던트를 발견하면 돋보기를 대고 가만히, 자그마한 부처님의 얼굴을 살펴본다. 승려가 지나치면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존경을 표하고, 우리나라의 임산부 배려석처럼 전철 좌석의 양 끝자리는 승려 배려석. 크고 작은 골목 어귀엔 어디나 불단이 서 있고, 집집마다 문 앞에는 향을 꽂은 밥 한 사발이 놓여있다. 서로에게 합장하며 인사하는 모습도 이 종교의 영향일 터였다. 시종일관 상냥한 태국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먼 고향을 떠나온 여행자의 얼굴에서 출가한 석가모니의 얼굴을 보는지도 모른다고.
 그 나라에는 유난히 타투한 사람들이 많았다. ‘유난히 많았다’고 기억하는 건 날씨 때문일 수도 있다. 축축한 습기와 뜨거운 태양 아래 드러난 사람들의 팔과 다리. 그 위로 새겨진 색색의 타투들. 뭣 모르는 여행객에게 친절할 뿐만 아니라, 어딘지 자유롭고 편안해 보이는 사람들이 자기 몸에 새겨 넣은 그림과 글자들. 여행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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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잃은 도시에서 계절을 찾는 여자 넷 무해, 진리, 예슬, 밤바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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