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쓸모를 묻는다면 -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한겨레출판

안정인
안정인 인증된 계정 · 읽고 쓰는 삶
2023/12/27

여름의 초입에 두 권의 소설을 읽었다. 여름 글방에서 추천해 주신 청소년 소설로 둘 다 상실을 주요 주제로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책은 좋았지만 과제를 하면서 속으로 자주 투덜거렸더랬다. 여름에 상실이라니. 여름이야말로 생동하는 젊음의 계절, 푸른 에너지로 충만한 계절이 아닌가. 무성하던 잎이 떨어지는 가을이나 앙상한 가지만 남는 겨울이면 몰라도 여름은 아니잖아. 그런데 글을 다 쓰고 나서 연이어 들리는 상실의 소식들, 수재로 인한 대규모 참사부터 가까운 이들이 겪은 갑작스러운 죽음의 고통까지 계속되는 부고를 들으며 깨달았다. 여름에 무슨 상실이냐고 했던 건 철없는 청춘의 오만일지도 모르겠다고. 상실이 미치지 않는 계절이란 없으며, 슬픔은 늘 헤아릴 수 없는 채로 우리 곁에 상존한다.
   
지난 달, 글쓰기 모임 동료들과 신형철 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산문집을 함께 읽었다. 2010년 이후부터 지면에 발표한 글을 모은 책으로 슬픔 자체에 대한 고찰부터 소설, 시, 사회, 문화, 노래 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관해 쓴 90여 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일단 평론집이라고 하면 해당 작품을 접하거나 접하지 않고의 차이가 큰 법인데, 신형철의 평론은 그 자체로 완결성이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주요 비평 분야인 문학이 아닌 정치·사회·문화를 비판할 때조차 그의 글은 아름답다. “시는 세계와 싸울 때조차도,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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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세상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를 들여다봅니다. 삶과 앎이 분리되지 않는, 삶을 돌보는 기예로서 글쓰기를 지향합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했고, 독립출판물 『영국탐구생활』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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