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가 생각하는 군자와 소인

삼한일통-김경민
삼한일통-김경민 · 청년 문화기획자
2022/04/14
선조수정실록 15권, 선조 14년 8월 1일 임진 1번째기사....."대사헌 이이 등이 정철이 의겸과 정분은 두터웠지만 취향이나 심사는 현저히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이 벗을 사귀는 데 있어 반드시 뜻이 같고 취향이 맞은 다음에야 가장 서로 친밀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분이 두텁다고 한 이상 어떻게 심사가 같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정철을 구해(救解)하기 위하여 말답지 않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남언경은 시비를 구분하지 않고 모호하게 양편 모두가 옳다고 하였고, 【언경은 일찍이 다른 일로 인피하면서, 이이 등의 일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는데 말이 명백하지 않았다.】 옥당은 처치하는 과정에서 단지 소요스러운 걱정이 있을까만 우려했을 뿐, 역시 직절(直截)한 논의를 한 적이 없는 것은 물론, 도리어 언관들에게 구차스런 습성만 남겼습니다. 이 때문에 신이 이이 등을 논계하여 체차시키려고 하였는데 동료들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신을 체직시켜 주소서."​하니, 답하기를,​"그대의 말이 망령스럽다. 정철이 교결하였다면 이는 신하로서 절의를 잃은 것이다. 전일 헌부가 와서 피혐할 적에도 이런 말로 하교하였지만 그 허실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 수 없다. 남의 시비를 논함에 있어서는 각자의 의견이 있는 것이고 옛날 현자들이 사람을 알아봄에 있어서도 역시 각자 같지 않았으니 오직 당시 임금들의 소견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이이의 의견도 일리가 있는 것인데 이것을 가지고 각립(角立)하여 기필코 격퇴시키려고 하니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 사직하지 말라."​하였는데, 승훈이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선조의 저 답변을 현대식으로 풀이하자면
"누가 옳다 그르다는 사람마다 다르겠지.
그건 현명한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오직 그 시대 임금의 생각이 어떠하냐에 따라 달려있는 법!"
선조 22년에 기축옥사가 발생해 동인을 쫓아내서 죽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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