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5
혹시 얼룩커 여러분은 얼룩소의 '신고'기능을 활용해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지난 주말동안 몇 개의 게시물을 읽고 '신고'기능을 활용해 보았습니다. 10월 5일 현재, 얼룩소에 구현된 '신고'기능은 '신고 사유'를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신고'를 하는 얼룩커가 어째서 그 사유라고 생각했는지 구체적인 이유를 적는 건 불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아래 캡쳐 화면처럼 말이지요.
기타를 제외하면 신고 사유를 따로 서술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무엇 때문에 '차별과 혐오'라고 판단했는지 보충설명을 적을 수는 없습니다. "그냥 '혐오스러운 발언'"처럼 보여서 신고하는 것이 아닌 이유를, 즉 신고 기능을 사용하는 얼룩커가 신고하려는 게시물이 명백히 "특정 소수자 집단의 차별을 조장하는" 발언이라고 판단한 근거가 무엇인지, 이를테면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안전을 해치는 아이디어"라고 판단했는지 보충할 방법은 아직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신고'를 하기에 앞서 '답글'이나 '댓글'로 토론을 해야 하는 걸까요? 설령 그 과정이 '안전'을 해치고 (저로 하여금) 이 공론장에서마저 '괴로움'을 겪게 하더라도 그래야 하는 걸까요? 그런 고민을 안은 채로, 저는 10월 2...
기타를 제외하면 신고 사유를 따로 서술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무엇 때문에 '차별과 혐오'라고 판단했는지 보충설명을 적을 수는 없습니다. "그냥 '혐오스러운 발언'"처럼 보여서 신고하는 것이 아닌 이유를, 즉 신고 기능을 사용하는 얼룩커가 신고하려는 게시물이 명백히 "특정 소수자 집단의 차별을 조장하는" 발언이라고 판단한 근거가 무엇인지, 이를테면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안전을 해치는 아이디어"라고 판단했는지 보충할 방법은 아직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신고'를 하기에 앞서 '답글'이나 '댓글'로 토론을 해야 하는 걸까요? 설령 그 과정이 '안전'을 해치고 (저로 하여금) 이 공론장에서마저 '괴로움'을 겪게 하더라도 그래야 하는 걸까요? 그런 고민을 안은 채로, 저는 10월 2...
금속활자는 세상을 조금은 바꿨겠죠. 장영실입니다. 한글날을 맞아 얼룩소와 함께 어떤 실험에 도전합니다. "왜 이메일 주소는 한글로 쓸 수 없나요?"
https://alook.so/posts/8WtwWk
따로 메일을 주실 분은 ' 장영실@우편.닷컴 '에게 메일을 주세요! (그리로 메일이 보내지지 않으신다면...? 위 '실험'글의 2일차, 를 참고해 주세요)
@이성규님 // 댓글을 읽고 '좋아요'만 눌러 뒀는데, 생각해보니 얼룩소에선 아직 '댓글'에 누가 좋아요를 눌렀는지는 알 수 없네요. 생각의 간극이 많이 좁아졌음을 느낄 수 있는 댓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 댓글을 별도의 글로 적어주시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얼룩커 픽에서 보고 싶은 내용이라서요. 제 글의 댓글로만 남아있기엔 몹시 아깝습니다.
@장영실님 // 답글이 늦었습니다. 생각이 매끄럽게 정리가 안된 탓도 있었고 조금 바빠서 접속하지 못했던 탓도 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다시 읽어보니 먼저 제기해주신 문제의 무게에 비해 지나치게 가벼운 톤으로 댓글을 달았던 것 같네요. 중간중간 비문도 보이고.. 불쾌하셨을 수 있는 상황에서 차분하게 논의 이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먼저 드리겠습니다.
링크해주신 글 감사합니다. 최근에 형사법 분야에서도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논의가 많고, 민사법에서도 입증책임의 전환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이와 일맥상통하는 견해인 것 같습니다. 대항표현의 부담이 피해자에게 지나치게 과중한게 사실이라는 점에도 동의합니다.
관율님이 첫 글에서 말씀하신, ‘충돌 가능성이 있는 두 원리를 조화롭게 작동시킬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따라서 정책을 만들고 운영하는 기존의 원칙에 공유해주신 글의 철학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제3의 길을 찾아나가는 것이 이 글타래의 장기적인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달았던 두 개의 댓글과 영실님의 댓글들은 사실상 두 원리의 양 끝 근처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부터 둘 사이의 적절한 지점을 찾아나가는 작업을 같이 해보면 좋겠습니다.
우선 제가 공유해주신 글의 철학에 공감함에도 불구하고 위에 달았던 댓글과 같은 원칙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민주사회의 일반 원칙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다수가 언제든지 소수가 될 수 있고, 소수가 언제든지 다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전제로 성립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드는 원칙은 ‘어떤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전염병을 잘 전파하기 때문에 배제되어야 한다’라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가 되었을 때도 이 사회가 망가지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하는 원칙이어야 합니다. ‘어떤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전염병을 잘 전파하기 때문에 배제되어야 한다’는 신념은 틀렸으므로 충분한 변호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채 어떤 권위체의 판단에 의해 곧바로 삭제해도 된다는 원칙이 만들어진다면, 이는 위와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가 되었을 때 그들이 어떤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을 곧바로 삭제할 수 있는 근거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법이 흉악범들의 인권만 챙긴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저는 형사사법이 흉악범들의 인권을 기를 쓰고 지켜주는 이유는 그 흉악범들을 지켜주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권까지 지켜주는 정도가 되어야 우리의 인권이 지켜질 수 있겠다고 안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흉악범에는 인권이 없다는 말은 빨갱이에게는 인권이 없다는 말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흉악범에게도 인권이 있어야, 빨갱이에게도 인권이 있어야, 아무 잘못 없는 선량한 시민인 인혁당 사건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전염병을 잘 전파하기 때문에 배제되어야 한다’는 발언이 100번 양보해도 삭제당해 싸다는데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가지는 중요성을 고려할 때 삭제에 이르는 과정에서 자신의 견해에 대한 사상의 자유시장에서의 마지막 변론이라는 최소한의 절차는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을 포기하지 못하겠는 이유입니다.
만약 제 글이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신고를 당하고, 제 생각을 변호할 기회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삭제를 당한다면, 저는 최소한 제 생각을 변호할 기회를 얻어내기 위해 싸울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제 댓글 입장의 반복이었고, 지금부터는 제 나름대로 영실님의 견해와의 화해점을 찾아보는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위에서 잠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민사법의 입증책임 전환 논의는 최근 상당히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환경소송이나 의료소송처럼 가해자와 피해자의 정보의 불균형, 경제력의 불균형이 극심한 종류의 분쟁에서는 입증책임의 전환을 통해 무기의 불균형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민사법의 대원칙상 피해자가 가해자의 행위와 자신이 입은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입증을 하는 것이 필요했다면, 위와 같은 케이스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행위와 피해자의 손해 사이의 상당한 개연성을 입증하기만 하면 가해자가 가해자의 행위와 피해자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는 식입니다.
일단 떠오르는 구체적인 생각을 그냥 나열해보자면, 정보통신망법의 임시조치와 같은 방법을 빌려오는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지금 얼룩소의 신고 기능이 아마도 이런 방식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제시된 신고 사유를 선택해서 신고를 하면 일단 임시로 블라인드 처리를 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소명이 있을 경우 블라인드를 해제하는 방식입니다. 영실님께서 말씀하신 ‘신고에 설명을 보충하는 방식’도 이 방식과 유사한 메커니즘을 전제하신게 아닌가 합니다.
다만 이 경우 블라인드를 당하는 사람은 적시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곤란해진다는 단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영실님께서 말씀하신 사례같은 경우는 표현의 시점이 중요한 경우는 아니어서 조금 다르겠지만, 정보통신망법상 임시조치는 사실상 신고가 있기만 하면 한달간 무조건 블라인드가 되는 방식이라 악용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일단 적당한 의견을 붙여 신고하면 블라인드에는 쉽게 성공하기 때문에 악용하고자 하는 유혹이 큰 방식입니다. 그래서 정보통신망법의 임시조치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 등과 관련해 많은 비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정보통신망법상 임시조치에 대한 소명은 임시조치를 한 정보통신망 제공주체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는 최후 변론의 기회와는 조금 동떨어져있기도 합니다.
이 방식을 조금 더 개선하는 방식으로 얼룩소가 제공한 신고 사유를 선택해서 신고를 하면 소명의 의무를 부여하고, 소명이 충분하지 못하면 비로소 삭제를 하는 방법이 있겠습니다. 두 가지 방법은 선 삭제 후 소명이냐, 선 소명 후 삭제냐의 차이가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소명의 기회를 줌으로써 ‘혐오표현’의 확산과 전염에 기여를 하는게 아니냐는 우려는 여전히 유효할 것 같긴 합니다. 그리고 입증책임이 자동으로 전환될만한 영역의 범위를 섬세하게 설정하는 것이 과제로 남겠죠. 소명과 그 반박의 과정에서 역시나 부여될 대항표현의 부담을 어떻게 더 감소시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솔직히 개인적으로 유사한 주제에 대해 나름 고민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서 일단 전혀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던져봤습니다(좋은 결론은 좋은 초안이 아니라 빠른 초안으로부터 나온다고 믿습니다). 사실 저는 영실님의 의견이, 신고를 하는 사람이 구체적인 근거를 붙여 신고를 하면, 그에 대해 얼룩소의 담당자가 삭제 여부를 판단하는 메커니즘을 전제로 했다고 이해하고 지금까지 글을 쓰긴 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신고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없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셨고, 신고 이전에 댓글로 공론화하여 논의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표현을 하신 것에 근거하여 판단하였습니다). 만일 제가 이해한대로 얼룩소의 특정 권위체가 삭제여부를 판단하는 주체가 되는 것을 전제한 것이라면, 다시 한 번 저는 그런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얼룩소가 사상의 자유시장 원리를 옹호하고, 그것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해서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지는데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제 믿음이 옳다면,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특정 표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적어도 얼룩소에서는, 어떤 특정 소수에 의해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성규님 // 댓글로 하시기엔 긴 이야기일 듯 싶은데, 천관율 님의 원글에 답글로 적으시고 여기에 링크를 주시면 어떨까요?
메모장에서 쓴 댓글을 붙여 넣기를 하는데 계속 댓글이 달리지 않는 오류가 있네요...
@이성규님 // 피해사실의 입증책임에 대한 형사법철학의 논의가 필요한 순간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얼룩소에서 '신고'한 게시물들은, 그중 하나를 꼽아 말씀드리자면 이를테면 이런 것이었습니다: 어떤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전염병을 잘 전파하기 때문에 배제되어야 한다. 물론 해당 글의 본문에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나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아, 하지만. 제가 이 이상 댓글을 덧대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이 글'이 이성규님께 좀더 설득력 있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항표현의 부담이 누구에게 짊어지워지는가에 대한 마지막 문단을 살펴 주세요.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20210234724419#0DKU
@장영실님// 의견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내용 충분히 일리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은 추상적이고 통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추상적인 정책이 개별적인 사안에 불충분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정책 자체가 구체적인 사안에 맞춤형으로 만들어지긴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차별(혐오) 표현에 존재를 부정당하는 당사자가 그 차별(혐오) 표현에 존재를 부정당한다는 것을 근거로 그 차별(혐오) 표현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도의 수고는 들여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차별(혐오) 표현을 한 사람은 그런 표현만으로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정도의 반론을 할 기회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정당성을 부여받은 공식 절차가 위법하고 부당한 행위랑 같은 선상에서 취급받으면 안되지 않을까요?
"차별(혐오) 표현에 존재를 부정당하는 당사자가 있다"는 명제는 참이지만, 존재를 부정하는 차별(혐오) 표현은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고, 개별적인 차별(혐오) 표현에 대해 삭제를 해야 할지, 그렇지 않을지를 판단하는 것은 구체적인 표현에 기반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캐치프레이즈는 강한 호소력을 가지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습니다. 디테일을 배제한 정의구현은 오히려 부정의의 편에 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수많은 역사적 사실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독재자들이 민주주의의 시끄러움을 견뎌야 하는 것처럼, 진보주의자들도 민주주의의 번거로운 절차를 견뎌야 한다는게 제 신념입니다. 민주주의는 내가 틀릴 수 있고, 언제든지 타인의 의견에 설득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완전히 틀렸다고 선언하는 것은, 비록 내 눈에는 너무 자명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번거로운 절차를 한 번 정도는 더 거쳐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성규님 // 차별(혐오)표현에 이미 존재를 부정당하는 당사자들이 있습니다. 살해당한 피해자의 유가족 내지는 폭행당한 피해자더러 그 피해의 구제, 추가피해의 방지에 앞서 "(살인범에게 혹은 폭행 가해자에게) 담배 한 대 정도는 (당신들이 주는 것이) 괜찮지 않나요?" 라고 말하는 것을 저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어떤 유가족, 어떤 피해자는 그걸 감당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존재의 부정(차별/혐오표현), 존재의 부정을 저지르는 존재의 부정(차별/혐오표현의 배제) 사이엔 분명히 선후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접근은 어떤 측면에서는 '피해의식'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얼룩소가 행동강령에서 "혐오와 차별 없는 대화"를 명시한 이상, 그리고 "안전한 공론장"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이상, 안전한 줄 알았는데 누군가에게는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 되어가려는 모습 앞에서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기가 몹시 어렵네요.
우리 사회에 얼룩소가 필요한 이유를 보여줄 수 있는 문제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로 인해 표현의 자유와 그 한계, 그리고 규제에 대한 섬세한 논의가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우선, 표현의 자유에 대한 흔한 오해를 미리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표현의 자유에 표현에 대한 비판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는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누군가 부적절한 발언을 하고 다른 사람이 이를 비판했을 때 "나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라고 항변하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죠. 그런데 그거, 완전히 틀렸습니다. 일단 표현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그 부적절한 발언이 입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이고요, 표현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이미 표현된 사상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도 지적하듯이, 표현의 자유는 '사상의 자유시장원리'를 전제로 합니다. 특정 표현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보다 사후적으로 활발한 논의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도태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아시겠지만, '자유시장'... 만만치 않습니다. 내 입에서 뭔가 발화가 되었다는건 그로 인해 탈탈 털릴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탈탈 털리는 것과 삭제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넘사벽의 차이가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신고에 의한 삭제'를 어느 정도 용인해야 할지는 섬세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떤 표현을 삭제한다는 것은 그 표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의 존재를 부정하겠다'는 정도의 발화를 하면서 너의 존재가 부정되어야 할 나름의 이유를 제시해주는건 민주 시민으로서의 최소한의 배려 아닐까요. 거 죽기 전에 담배 한 대 정도는 괜찮지 않나요? 삭제 당하기 전에 왜 그 표현이 삭제되어야 하는지 이야기 해주고, 거기에 대해 변명할 기회 정도는 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왜 삭제를 해야 할지 이유를 제시하는게 필요할테구요.
이참에 얼룩소의 신고사유 및 삭제의 기준을 설정하면서, 어느 정도의 표현이라면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추방되어야 할지,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추방하기 위해 어떤 절차를 밟는 것이 좋을지 논의해보는건 어떨까요? 그리고 이런 논의를 반영하여 얼룩소의 행동강령을 다듬어 나간다면 정말 멋질 것 같습니다.
원글의 마무리, "두 원리를 그저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충돌 가능성이 있는 두 원리를 조화롭게 작동시킬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갈 길이 멀다. 얼룩커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가 조금 구체화 되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삭제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컨센서스를 모으는 절차, 삭제 사유에 대한 방어권의 보장 정도는 필수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컨센서스를 모으는 절차는 대장 얼룩소님께서 만드셨던 청와대 청원의 메커니즘을 빌려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 같구요. 더 반짝거리는 아이디어 누구 없으신가요?
@장영실님 // 답글이 늦었습니다. 생각이 매끄럽게 정리가 안된 탓도 있었고 조금 바빠서 접속하지 못했던 탓도 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다시 읽어보니 먼저 제기해주신 문제의 무게에 비해 지나치게 가벼운 톤으로 댓글을 달았던 것 같네요. 중간중간 비문도 보이고.. 불쾌하셨을 수 있는 상황에서 차분하게 논의 이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먼저 드리겠습니다.
링크해주신 글 감사합니다. 최근에 형사법 분야에서도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논의가 많고, 민사법에서도 입증책임의 전환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이와 일맥상통하는 견해인 것 같습니다. 대항표현의 부담이 피해자에게 지나치게 과중한게 사실이라는 점에도 동의합니다.
관율님이 첫 글에서 말씀하신, ‘충돌 가능성이 있는 두 원리를 조화롭게 작동시킬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따라서 정책을 만들고 운영하는 기존의 원칙에 공유해주신 글의 철학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제3의 길을 찾아나가는 것이 이 글타래의 장기적인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달았던 두 개의 댓글과 영실님의 댓글들은 사실상 두 원리의 양 끝 근처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부터 둘 사이의 적절한 지점을 찾아나가는 작업을 같이 해보면 좋겠습니다.
우선 제가 공유해주신 글의 철학에 공감함에도 불구하고 위에 달았던 댓글과 같은 원칙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민주사회의 일반 원칙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다수가 언제든지 소수가 될 수 있고, 소수가 언제든지 다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전제로 성립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드는 원칙은 ‘어떤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전염병을 잘 전파하기 때문에 배제되어야 한다’라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가 되었을 때도 이 사회가 망가지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하는 원칙이어야 합니다. ‘어떤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전염병을 잘 전파하기 때문에 배제되어야 한다’는 신념은 틀렸으므로 충분한 변호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채 어떤 권위체의 판단에 의해 곧바로 삭제해도 된다는 원칙이 만들어진다면, 이는 위와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가 되었을 때 그들이 어떤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을 곧바로 삭제할 수 있는 근거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법이 흉악범들의 인권만 챙긴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저는 형사사법이 흉악범들의 인권을 기를 쓰고 지켜주는 이유는 그 흉악범들을 지켜주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권까지 지켜주는 정도가 되어야 우리의 인권이 지켜질 수 있겠다고 안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흉악범에는 인권이 없다는 말은 빨갱이에게는 인권이 없다는 말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흉악범에게도 인권이 있어야, 빨갱이에게도 인권이 있어야, 아무 잘못 없는 선량한 시민인 인혁당 사건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전염병을 잘 전파하기 때문에 배제되어야 한다’는 발언이 100번 양보해도 삭제당해 싸다는데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가지는 중요성을 고려할 때 삭제에 이르는 과정에서 자신의 견해에 대한 사상의 자유시장에서의 마지막 변론이라는 최소한의 절차는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을 포기하지 못하겠는 이유입니다.
만약 제 글이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신고를 당하고, 제 생각을 변호할 기회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삭제를 당한다면, 저는 최소한 제 생각을 변호할 기회를 얻어내기 위해 싸울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제 댓글 입장의 반복이었고, 지금부터는 제 나름대로 영실님의 견해와의 화해점을 찾아보는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위에서 잠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민사법의 입증책임 전환 논의는 최근 상당히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환경소송이나 의료소송처럼 가해자와 피해자의 정보의 불균형, 경제력의 불균형이 극심한 종류의 분쟁에서는 입증책임의 전환을 통해 무기의 불균형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민사법의 대원칙상 피해자가 가해자의 행위와 자신이 입은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입증을 하는 것이 필요했다면, 위와 같은 케이스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행위와 피해자의 손해 사이의 상당한 개연성을 입증하기만 하면 가해자가 가해자의 행위와 피해자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는 식입니다.
일단 떠오르는 구체적인 생각을 그냥 나열해보자면, 정보통신망법의 임시조치와 같은 방법을 빌려오는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지금 얼룩소의 신고 기능이 아마도 이런 방식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제시된 신고 사유를 선택해서 신고를 하면 일단 임시로 블라인드 처리를 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소명이 있을 경우 블라인드를 해제하는 방식입니다. 영실님께서 말씀하신 ‘신고에 설명을 보충하는 방식’도 이 방식과 유사한 메커니즘을 전제하신게 아닌가 합니다.
다만 이 경우 블라인드를 당하는 사람은 적시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곤란해진다는 단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영실님께서 말씀하신 사례같은 경우는 표현의 시점이 중요한 경우는 아니어서 조금 다르겠지만, 정보통신망법상 임시조치는 사실상 신고가 있기만 하면 한달간 무조건 블라인드가 되는 방식이라 악용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일단 적당한 의견을 붙여 신고하면 블라인드에는 쉽게 성공하기 때문에 악용하고자 하는 유혹이 큰 방식입니다. 그래서 정보통신망법의 임시조치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 등과 관련해 많은 비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정보통신망법상 임시조치에 대한 소명은 임시조치를 한 정보통신망 제공주체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는 최후 변론의 기회와는 조금 동떨어져있기도 합니다.
이 방식을 조금 더 개선하는 방식으로 얼룩소가 제공한 신고 사유를 선택해서 신고를 하면 소명의 의무를 부여하고, 소명이 충분하지 못하면 비로소 삭제를 하는 방법이 있겠습니다. 두 가지 방법은 선 삭제 후 소명이냐, 선 소명 후 삭제냐의 차이가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소명의 기회를 줌으로써 ‘혐오표현’의 확산과 전염에 기여를 하는게 아니냐는 우려는 여전히 유효할 것 같긴 합니다. 그리고 입증책임이 자동으로 전환될만한 영역의 범위를 섬세하게 설정하는 것이 과제로 남겠죠. 소명과 그 반박의 과정에서 역시나 부여될 대항표현의 부담을 어떻게 더 감소시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솔직히 개인적으로 유사한 주제에 대해 나름 고민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서 일단 전혀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던져봤습니다(좋은 결론은 좋은 초안이 아니라 빠른 초안으로부터 나온다고 믿습니다). 사실 저는 영실님의 의견이, 신고를 하는 사람이 구체적인 근거를 붙여 신고를 하면, 그에 대해 얼룩소의 담당자가 삭제 여부를 판단하는 메커니즘을 전제로 했다고 이해하고 지금까지 글을 쓰긴 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신고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없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셨고, 신고 이전에 댓글로 공론화하여 논의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표현을 하신 것에 근거하여 판단하였습니다). 만일 제가 이해한대로 얼룩소의 특정 권위체가 삭제여부를 판단하는 주체가 되는 것을 전제한 것이라면, 다시 한 번 저는 그런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얼룩소가 사상의 자유시장 원리를 옹호하고, 그것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해서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지는데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제 믿음이 옳다면,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특정 표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적어도 얼룩소에서는, 어떤 특정 소수에 의해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성규님 // 댓글로 하시기엔 긴 이야기일 듯 싶은데, 천관율 님의 원글에 답글로 적으시고 여기에 링크를 주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