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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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ebeing · 마음가는대로 무엇이든, Fiction
2023/10/30
6.25 전쟁통에 부모를 잃고 헤매던 일곱 살 소년을 데려간 사람은 양조장 주인이었다. 
   
외딴곳 산기슭에 자리해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없었던 그곳은 당시 쌀이 귀해 술을 빚지는 못하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의 밀가루 원조가 시작되자 그것으로 다시 가짜 쌀막걸리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마흔넷의 주인은 힘 좋은 이십 대 청년 하나를 직원으로 두고 부지런히 막걸리를 빚었으며 꼬마 일꾼이 된 그는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다.
   
그 자신은 배우지 못했으나 아이의 영명함을 알아본 주인은 그에게 학교에 가기를 권했다. 그러나 어린 그는 왠지 익어가는 술 내음이 좋았고 자기 몸이 셋 이상 들어갈 만큼 커다란 섬독들을 닦고 바닥 청소와 바깥심부름 등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는 술도가 일이 너무 좋아 책들만 좀 구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학년 구분도 없이 여기저기서 구해온 헌 책들과 한문과 일문이 아니라면 내용도 모른 채 사다 준 것들로 일과가 끝나면 혼자 공부를 했다.
   
전쟁 전, 교사였던 아버지로부터 이미 다섯 살에 한글을 완전히 떼고 기본 한자를 쓰진 못해도 읽으면 뜻은 대충 알 정도였기에 일 년이 안 돼 국민학교 책들은 전부 창고로 들어갔다. 

정이 많은 주인은 그런 소년이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워 주식이다시피 먹던 수제비 대신 저녁 한 끼는 꼭 쌀로 밥을 지어 먹였다. 그 자신도 아내와 아들 둘을 전쟁통에 잃었기에 볼수록 아이가 대견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마음이 짠했다.
세상에 저런 녀석이 다 있나, 그래.....
   
그냥 있었으면 될 것을 괜히 나섰던 피난길에 그가 잠시 끼니를 구하러 간 사이, 미군의 폭격으로 시신조차 찾을 수 없이 사라져버린 처자식이 남겨놓은 엄청난 상처는 녀석을 볼 때마다 조금씩이나마 아물어 가는 듯해서 때로 그는 어떤... 뜻 모를 감사함조차 느끼곤 했다.
   
그렇게 열 두 살이 됐을 무렵 소년은 술도가 일은 물론 지금의 화물차 격인 <짐 자전거>를 타고 읍면을 넘어 먼 시내까지의 배달과 수금을 맡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즈음부터 주인은 밀가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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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게시된 이야기는 허구이며 픽션입니다. 혹시 만에 하나 현실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이는 절대적으로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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