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의 끝은 어딘가 – 9.19 남북 군사 합의 파기를 맞아
2023/11/23
그 길의 끝은 어딘가 – 9.19 남북 군사 합의 파기를 맞아
1996년 가을 나는 뜻밖의 명령을 받는다. 6밀리 카메라 한 대를 들고 사건·사고가 가장 많이 벌어지는 소방서에 가서 숙식을 함께하며 거기서 벌어지는 일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보라는 것이었다. 이후 한 달 반 꼼짝없이 소방서에서 지내면서 소방관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소방관, 특히 구조대원들 가운데 이른바 특수부대 출신들이 꽤 많았다. 체력과 용기를 기본으로 갖춰야 할 직업이기 때문일까. 쉬는 시간이면 그분들이 펼치는 왕년의 무용담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입을 벌렸다. 그중 나이 지긋한 분의 입에서 ‘무장공비의 추억’이 흘러나왔다. 1978년 일어났던 광천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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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광천읍 해변으로 침투한 무장간첩들이 미군 레이더 기지 정찰 중 시골 아주머니 3명에게 발각되자 그중 2명을 살해한다, 이후 육로로 북상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5명이 더 목숨을 잃었고, 무장간첩 일당은 김포 지역의 한강을 도하해서 북으로 멀쩡히 살아 돌아갔다. 한국군으로서는 뼈아픈 정도가 뼈가 부러질 듯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 무장간첩들은 넘어진 사람 밟아주는 심보까지 보였다. 고의인지 우연인지는 몰라도 자신들의 행적들을 소상히 적은 일지를 남쪽에 흘리고 간 것이다. “여기가 뚫렸었군! 여기 책임이 어디야!” 각 지역 경비책임자 사이에서는 곡소리가 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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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를 꺼낸 소방관은 당시 책임 소재가 컸다는 1공수여단 소속이었다. “어깨를 맞닿다시피 하고 탐침봉으로 산을 쑤시고 다녔는데…. 공비들은 무슨 투명인간 같았어.” 그로부터 며칠 뒤 여느 날처럼 일과를 시작할 무렵 한 소방관이 휴게실로 들어와 외쳤다. “티브이 켜 봐. 북한 잠수함이 강릉에 나타났대.” 1996년 9월18일 이른바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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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침범과 스파이 혐의는 분명했지만 꽁치잡이 그물에 잠수함 스크루가 엉키면서 좌초한 사고가 원인인 것 같았기에(북한도 ...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이런건 라인란트 재무장과 같습니다. 나치 독일 세력이 비무장지대 라인란트에 들어오자 당시 프랑스 군대는 대응하지말자고 하여 나치독일세력이 라인란트를 다시 점령하여 중요한 요충지 라인란트를 점령한 나치 독일 세력은 세력을 키워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별개로 영국 총리 네임 체임벌린은 뮌헨 협정으로 나치독일과 평화협정으로 전쟁을 막았다고 생각했지만 나치독일은 결국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요약 북한은 항상 경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