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노숭의 짠내나는 유배 생활 (3) : “달이 뜨면 저는 아버지를 부르겠어요.”

박영서
박영서 인증된 계정 · 울고 웃는 조선사 유니버스
2023/05/08
드라마 <천명> 중 (시사코리아)

심노숭은 노론 시파의 스피커였던 심낙수(沈樂洙, 1739~1799)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아우로는 심노숭의 동생이자 평생의 벗이었던 심노암(沈魯巖, 1766~?)이 있었죠. 또한, 1777년 16세의 나이로 전주 이씨를 맞이하는데요. 전주 이씨는 고생만 하다가 1792년에 오랜 투병을 끝내고 돌아갑니다. 그녀와 심노숭 사이에 있던 1남 3녀 또한 둘째 딸을 제외하고는 모두 요절했죠. 유배를 가던 시점에서 평생의 벗 심노암과 하나밖에 없는 둘째 딸은 심노숭의 모든 것이자, 무슨 수를 쓰더라도 지키고 싶던 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족과의 생이별은 유배객이 받는 가장 큰 고통이지요. 심노숭은 억울하게 유배를 간다는 점에서는 떳떳하고 당당하게 대처했지만, 딸 아이를 혼자 두고 간다는 생각에 이르면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걸 참을 수 없었습니다. 유배를 떠나는 길에서도 딸이 건넨 작별 인사는 그를 자꾸만 눈물 젖게 하였지요.
   
1801년 3월 4일 - 『남천일록(南遷日錄)』
   
유배를 떠나는 길, 이미 밤은 깊어 빗처럼 생긴 초승달이 서쪽 하늘에서 비추고 있었다. 자연스레 우리 집이 떠올랐다. 달은 아마도 우리 집 서쪽, 두 그루의 삼나무 위에서 걸려 있으리라. 동생은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 딸과 마주 앉아, 분명 내가 가고 있는 여정을 함께 헤아리고 있겠지.
딸이 헤어질 때, 내 소매를 붙잡고 흐느껴 울면서,
“아버지. 달이 뜨면 저는 달을 보면서 아버지를 부르겠어요. 아버지도 달을 보고 저를 불러보세요.”라고 말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조용히 흘러 옷깃을 적셨다. 어린 딸이 이토록 슬프게 하였으니, 내 업보는 죽어서도 갚지 못할 것이다.
   
1801년 3월 16일 - 『남천일록(南遷日錄)』
   
밤에 달빛이 너무나 아름다워 집 마당을 거닐었다. 달을 보고 아버지를 부르겠다던 딸내미의 말이 생각나, 가슴을 돌로 누른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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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를 유영하는 역사교양서 작가, 박영서입니다.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을 썼으며, 딴지일보에서 2016년부터 역사, 문화재, 불교, 축구 관련 기사를 써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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