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축구'가 밟아온 미답의 경지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6/05
’청소년 축구‘가 밟아 온 미답의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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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코카콜라였다. 월드컵 외엔 별반 관심이 없던 FIFA에 비해 코카콜라는 각 대륙마다 펼쳐지던 ’청소년 축구‘ 챔피언쉽에 주목했다. “이걸 엮어서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를 열어 보면 어떨까.” 성인 축구에 비해서 기량은 떨어질지 모르나 “공이 어디로 굴러갈지 모르는” 의외성은 충만하고, 성인축구에서는 넘사벽인 축구 강국과도 해볼만한 경기를 치를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으니 축구 변방국들의 호응도가 클 것이라는 기대였다. 코카콜라는 FIFA에 5백만 달러의 거금을 희사하며 축구 대회 창설을 제안했고 마침내 1977년 ’코카콜라배 쟁탈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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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얘기했다시피 ’청소년축구대회‘는 이미 각 대륙마다 열리고 있었고, 한국 역시 아시아 청소년 축구 대회 단골 출전팀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그때까지는 성인 대표팀은 밟아보지 못한 ’미답의 경지‘를 먼저 밟기 시작한다. 우선 1978년 아시아청소년 축구대회 결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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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른쪽이 박항서


당시 한국 축구 최대의 콤플렉스 중 하나는 북한이었다. ’친선‘을 명분으로 한 축구 한일전은 흔히 벌어졌고 아예 ’정기전‘까지 열렸지만 북한과의 ’친선‘ 경기를 얘기했다가는 당장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코로 육개장을 들이킬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어느 종목에서건 북한과 맞붙으면 선수들이건 코칭스태프건 초긴장을 했다. 뮌헨 올림픽 여자 배구 3,4위 전에서 북한에 참패한 여자배구팀은 숙소 방을 나오지도 못하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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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월드컵 예선 막바지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한 선수가 그 상처를 안고 살다가 끝내 이민을 가야 했을 정도로 국민적 관심이 출중한 축구에서랴. 더하여 북한은 1966년 월드컵 8강이라는 당시 어떤 아시아 국가도 이루지 못한 찬란한 금자탑을 쌓아올린 터였다. 한국은 북한을 피해 다녔다. 1966년 월드컵 예선에서는 아예 FIFA에 벌금을 내면서까지 출전을 포기했고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서는 북한과 맞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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