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과 자의식

ACCI
ACCI · 글과 글씨를 씁니다.
2024/02/08
통역이 망하는 이유는 정말 다양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무서웠던 건 완벽주의에 걸려 넘어지던 일이다. 대부분의 날들은 무난했으나 가끔 컨디션이 엉망인 날은 넘어진 것도 모자라, 그것에 대한 곱씹기가 시작되었다.

'으이그... Headmonk가 아니라 Abbot이잖아... 사람들 얼마나 헷갈리겠어. 어떡해!'

저 정도면 4절까지 나갔다고 보면 된다. '으이그'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쌩-하고 그 자릴 떠나야 한다. 가끔은 적확을 버리고 맥락만 취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에 바로 털어버리고 ‘지금, 지금, 오로지 지금’만 해야 한다.

완벽주의는 자의식을 향한 매몰이다. 그때부터는 메시지의 경중 파악이 되지 않고, 말을 들어도 말귀를 못 알아먹는 현상이 일어난다. 내가 '못했다는 생각', '잘했다는 생각', 둘 다 같은 매몰을 일으키고 후자의 여파가 더 길 때가 많다.

매몰은 닫힘이고 고립이다. 거기서도 영감은 솟지만 무겁고 탁하다. 그래서 나는 통역을 하면서 남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 상태가 여러모로 위험한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여행, 음악, 인문, 산책에 심취하며 캘리그래피와 통/번역을 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삽니다.
58
팔로워 46
팔로잉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