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7
최근 3년간, 아빠가 내게 해준 말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다음과 같다. 바로 작년 이맘때쯤의 당부다.
“아영아. 아빠는 네가 아빠가 모르는 사이 어떤 남자랑 같이 살았어도, 아이를 낳았어도, 혹은 낳지 않는 선택을 한 적이 있어도, 혹은 그런 관계에서 누구에게 어떤 실리적 도움을 받았다 한들 괜찮다. 전혀 상관없다. 너는 떳떳한거야. 우리는 떨어져 살잖아. 그동안 네가 아빠 모르는 사이 결혼을 했어도 그래서 이혼을 몇 번을 했어도 괜찮아. 앞으로 그렇게 결혼하고 이혼해도 좋아. 그건 너 개인의 판단이고 선택이야.
그리고 혹여라도 누가 그런 행실운운하며 사회안에서 너를 제약하려 할 때는 절대 매이지 마라. 둘만의 남녀관계에 관한 내용을 오픈하는건 남자로서 아주 못난 사람들이나 하는 거고 쓰레기 짓이니까. 부끄럽고 욕 먹을 건 그사람이지 네가 아니야. 본인이 그렇게까지 못났다고 이 사회에 대놓고 공표하는데 너랑 그게 무슨 상관이니. 꼭 기억해야 한다. 남자와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 있을 모든 일들에서 반드시 자유로워라. 그러니 남자와 연인으로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해 언제나 당당해라. ”
그의 말은 상당히 뜬금없었어서 그의 당부에 나는 어이없이 반문했다.
”아빠 갑자기 무슨 말이야 나 딱히 그렇게 대단하게 요망한 거까진 아직 못해본 거 같은데? 혹시 어디서 무슨 말 들었어?“
”전혀. 그냥 언젠가 말해주고 싶었어. 이런 류가 너의 발목을 잡으려 할 적에 너는 아무 잘못 없으니 절대로 매이지 말라고. 완전히 자유로우라고. 너만 안 매이면 된다고. 계속 빛나고 계속 더 많은 해야 할 일을 하며 더 신나게 사람들과 관계맺으며 날아다니면 된다고. “
아. 일상적으로 너무나 생각없어보이는 내 아빠라서 내가 평소에 그를 대하는 감각은 그가 바보가 아닐까 은연중에 반쯤...
사랑과 아름다움. 이 둘만이 중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삶의 이유이자 내용이자 목적이다. 실은 이들이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살게 만드는 절대적인 두가지라 믿는다. 인간은 제 영혼 한 켠에 고귀한 자리를 품고 있는 존엄한 존재라고 또한 믿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 보이지 않는 자리들을 손에 만져지도록 구체적으로 탁월하게 설명해내는 일로 내 남은 삶은 살아질 예정이다. 부디 나의 이 삶이 어떤 경로로든 나와 마주하는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살아있게 만들 수 있다면.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