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Kyoto)를 구한 사람

이영록
이영록 · Dilettante in life
2023/09/05
  얼마 전 교토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도심 도처에 오래된 사찰 및 신사가 깔려 있다시피 했다.
  물론 이것들을 세운 사람의 상은 드물지만, 안내 팻말에 세워진 연도 등과 함께 적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가장 최근에 이들을 전쟁의 파괴에서 구한 사람이 반드시 교토 어딘가에는 동상으로 서 있어야 한다.  아마 없으리라 확신하지만.
  그는 바로 이 사람이다.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육군성 장관이던 헨리 스팀슨(Henry Stimson).
source; https://en.wikipedia.org/wiki/Henry_L._Stimson
  스팀슨은 육군성 장관으로서 일본에 대한 공중 공격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었다[1]. 덤으로 맨해튼 프로젝트의 수장 레슬리 그로브즈(Leslie Groves) 장군의 상사기도 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육군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1945년 5월 30일 그로브즈는 폭탄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려 스팀슨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 때 가진 대화는 대체로 이렇다[2].

스팀슨(S); (원자 폭탄) 표적은 결정되었나?
그로브즈(G); 그 보고서는 준비되어 내일 아침 마샬 장군의 승인을 얻을 예정입니다.
S; 당신의 보고서는 모두 완성되었겠지?
G; 스팀슨 씨, 나는 아직 검토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실히 하고 싶습니다.
S; 내가 좀 보고 싶네.
G; 강 건너에 있어서 가지러 가려면 시간이 걸리겠는데요.[3]
S; 나는 온종일 시간이 있네. 그리고 자네 사무실이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알고 있네. 이 책상 위에 전화가 있네. 당신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그것을 가지고 오도록 하게.
G; 제 보고 라인은 마샬 장군입니다. 그에게 먼저 보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S; 이번 한 번만은 내가 마지막 결정권자가 되려고 하네. 아무도 나에게 이것에 대하여 어떻게 하라고 말할 수 없네. 이 문제에 관한 한 내가 결정권자일세. 당신은 보고서만 가지고 오면 되네.
....
S; 어떤 도시 또는 표적들을 폭격하려고 계획했나?
G; 교토를 표적으로 생각합니다.  그곳이 폭탄의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없는 정도의 알맞는 크기이기 때문입니다.
S; (즉시 대답) 나는 교토를 폭격하는 것을 원치 않네. [일본의 문화 중심지, 고도로서 오랜 역사에 대해 언급. 그 외에도 여러 이유를 열거]

그 15~20분 동안 보고서가 도착하여 그로브즈가 스팀슨에게 건네 주었으며 바로 읽었다.

S; (그의 사무실과 마샬 장군의 사무실 사이에 있는 문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마샬 장군, 바쁘지 않다면 잠깐 건너와 주시오. (마샬이 건너오자) 마샬, 그로브즈가 방금 나에게 표적에 관한 보고서를 가지고 왔어요. 나는 이것에 반대입니다. 나는 교토에 사용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 후부터는 교토는 우선 순위에서 빠지고 다시 언급되지 않았다.

 만약 교토에 첫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면 어느 정도가 파괴되었을까? 히로시마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히로시마의 폭심(hypocenter)은 평평한 도시의 거의 중심부에 정확히 떨어졌고,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반지름 2km 내는 거의 완벽하게 건물들이 완파되었으며, 4km까지는 상당 부분이 반파되었다. 폭심에서 3,600m 떨어진 곳의 전신주가 숯덩이가 되었을 정도니...
source; https://www.science.org/content/blog-post/mapping-hiroshima-s-legacy

  반면 교토는 어땠을까?  교토도 히로시마처럼 도심은 넓은 평지고, 주변을 산이 둘러친 분지이다. 이는 폭격 효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 바람이 산에 반사되어 파괴를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구글 지도를 보면 도시의 중심지는 거의 교토 역 주변이므로, 여기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면 아래 그림과 같다.
source; google map
  첫 원 안은 거의 모든 건물이 파괴되고, 두 번째 원까지는 반파가 지배적일 것이다. 유명한 니조 성기요미즈데라도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교토 고쇼는 아슬아슬하다. 유명한 금각사와 은각사(지쇼지)는 6km에 가깝기 때문에 피해 확률은 낮지만....

  이런 것들을 대충 본 관광객이라면 - 일본인들은 뭣하다 싶더라도 - 스팀슨에게 잠시라도 경의를 표해야 하지 않겠는가.

  漁夫


[1] 미국 공군이 독립한 것은 2차 대전 후로, 전에는 해군 혹은 육군 소속이었다.
[2] '원자폭탄 만들기(The making of the atomic bomb)', 리처드 로즈, 문신행 역, 민음사, 하권 p.274~75
[3] 워싱턴의 스팀슨 사무실에서 그로브즈의 사무실은 포토맥 강 건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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漁夫란 nick을 오래 써 온 듣보잡입니다. 직업은 공돌이지만, 인터넷에 적는 글은 직업 얘기가 거의 없고, 그러기도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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