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 살 때, 집이 도심에서 좀 떨어진 외곽 오죽헌 옆에 있었다. 심심하면 오죽헌 뒷문으로 슬쩍 들어가 경내를 배회하는 특권을 누리기도 했다. 오죽헌 가는 반대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저수지가 있었다. 저수지는 엄청난 규모까지는 아니었지만 넓고 고즈녁한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나는 가끔 그 길을 따라 저수지까지 걷곤 했는데 그게 나의 유일한 운동이었다. 저수지까지 가는 길 양옆은 보리밭이었다. 봄이 되면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긴 청보리들이 쏴쏴 소리치며 줄지어 이리저리 물결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러나 겨울에 그 길을 걸은 적은 없었다.
겨울이 되고 어느날, 초2였던 딸의 행방이 묘연했다. 친구집에서 놀고 있으려니 했지만 너무 오래 돌아오질 않았다. 해질녁에나 돌아 온 딸은 저수지에서 낚시하는 걸 구경했다고 했다.
이 겨울에 낚시를 한다고? 믿어지지 않았다. 저수지가 다 얼지 않았어? 얼음을 뚫고 낚시를 한다니 그때까지 나는 그런 낚시가 있는 줄도 몰랐다. 정작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