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玄)’과 ‘명(明)’ - 사회주의자의 자기 증명 - 최명익, 「심문」
2023/12/09
‘현(玄)’과 ‘명(明)’ - 사회주의자의 자기 증명 - 최명익, 「심문」
「심문」은 삼 년 전에 죽은 아내 ‘혜숙’을 잊지 못하는 ‘나(김명일)’가 기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하얼빈을 향해 달리는 기차의 속도는 ‘나’에게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켜 주”는 것만 같다. 마치 “한 터취의 오일같이 캔버스 위에 부딪쳐서 한 폭 그림이 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사실 화가인 ‘나’는 “어느 중학교의 도화 선생도 그만두고” “무직업자”와 다를 바 없이 살아오며 “십 여년 간 살아오던 집도 팔아 버리고” 이제 “일정한 주소”조차 없는 처지였다. 하얼빈 행을 택한 이유는 하얼빈에 있는 “옛친구이자 착실한 실업가로 성공”한 ‘이군’을 “배워” 다시 “일정한 직업과 주소를 갖게 될지 모를” “포부”를 다시 갖게 될 기대감 때문이었다.
사실 이제 기차는 “무슨 대단하거나 신기로운 관찰은 물론 아니요” 하얼빈 행이 “멀리 또 고향을 떠나는 길도 아니라 슬픈 착각”을 굳이 할 이유도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심문」의 전반부에 과장하듯 채워져 있는 ‘승차 모티프’에 대한 서술은 ‘나’의 이동의 의미를 극대화 하기 위한 전략에 가깝다. 조선을 떠나 하얼빈으로 간다는 사실 자체에 방점을 찍고 승차 감각의 과도한 표현을 이해해야 한다.
즉, 기차를 통해 느끼는 심리적 변화는 이제 자연 발생적이라기보다 공간 이동의 과정에서 스스로가 의도한 어떤 의례에 가까운 절차였다. 1930년대 후반 기차는 식민지 조선의 도시인들에게 더 이상 신기한 대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국경을 넘는 일의 절차-직업과 신분을 증명하고, 세관을 치르는 등-에 따른 감정상의 동요라고 말하는 편이 더 타당해 보인다. 하얼빈행 기차를 타기 위해 자신의 삶을 일순간에 획시기적으로 증명해...
얼룩소 최고의 작가답군요.
선생님 글은 공부하기 좋아 찾아봅니다.
@최서우 염치 없는 이들이 너무 많죠. 그렇다고 뭐 대단한 걸 바라지도 않습니다.
@dakamariog 현과 명. 이름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더군요.
@mari 외국인이 대단한 겁니다. 공부 열심히 하시네요.
@캘리뽀냐 감사합니다.
편견인지몰라도 저때의 지식인에게는 적어도 고뇌의 흔적과 인간에 대한 예의나 반성 있는데 지금의 지식인에겐 서슬퍼른 칼 춤만 있는것 같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렵지만 열심히 읽었습니다. 공부하면서 봤어요.
현과 명. 어둠과 밝음. 이름으로 대비시켰군요. 이렇게 해석하시는 분 처음 봤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새로운 지식을 얻게 해줘 고맙습니다. 깊이가 있어서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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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인지몰라도 저때의 지식인에게는 적어도 고뇌의 흔적과 인간에 대한 예의나 반성 있는데 지금의 지식인에겐 서슬퍼른 칼 춤만 있는것 같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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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과 명. 어둠과 밝음. 이름으로 대비시켰군요. 이렇게 해석하시는 분 처음 봤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