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과 테크노에 관한 사유 - 단조로운 북소리의 반복이 만들어낸 새로운 공간
'68년 프랑스 학생운동을 기점으로 북미와 서구 대학가의 저항정신을 주도했던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주요인물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그의 책 Philosophie der neuen Musik ("새 음악에 대한 철학", 1949)에서 당대까지의 서양음악사의 흐름을 분석하면서, 교향곡에서 바이올린의 선율로서 주로 나타나는 멜로디가 작곡가의 주관성의 표현이고 이는 곧 시대에 따라 변하는 개인주체의 자유도에 대한 알레고리로서 분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쇤베르그의 12-톤 음악은 기존 음계의 굴레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자유로운 표현으로서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멜로디가 복잡해지는 추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그가 만약 오늘날까지 살아 90년대부터 주류문화가 되기 시작한 랩과 2000년대부터 양지로 올라오기 시작한 테크노레이브를 보았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그는 아마 위 장르에서 두드러지는 멜로디의 부재를 거대한 체제에 굴복된 개인주체성과 연관지어 오늘날 사회에서 더이상 참된 의미의 주관적 표현은 불가능하다라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그의 분석과 논리를 과학적으로 검증할 길은 없기 때문에 그의 이론의 가치는 명제의 진위여부를 따지는 것보다도 음악에 대한 사유의 언어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대화에 불을 지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평가되어야 마땅하겠다. 한편 하이브라우(high-brow)에 해당하는 클래식 작곡가들만을 주제로 다루고 재즈에 대해 무지했으면서도 비판적이었던 그가 과연 대중문화를 논할 자격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는 음악이 "부르주아의 전유물"이어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특정계층의 문화와 관습에만 귀가 밝아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오늘날 우리가 힙합문화와 랩의 역사를 돌아봤을 때 찾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유산은, 건국부터 지금까지 주욱 인종사회이어왔던 미국에서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언어가 없었던 소외계층이 집단의식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복제가능한 방법론으로 보편화시켰다는 것이다. 힙합 대중화에 앞장섰고 갱스터랩의 1세대 및 대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