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에서 자라면서 배운 겸손
2022/12/26
By 사라 스마쉬(Sarah Smarsh)
동물을 죽이기엔 추운 날이 더 낫다. 따뜻한 계절에는 밀밭에서 할 일이 많고, 더위와 햇빛 때문에 고기도 더 빨리 상하기 때문이다.
캔자스 시골에 있는 우리 가족 농장에서는 파리가 몰려들지 않는 가을과 겨울에 도살을 했다.
흐린 오후, 진흙 길을 버스로 한 시간 달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커다란 선홍빛 동물 시체가 보이곤 했다. 조부모님과 살던 콘크리트 블록 농장 집 근처에 암소가 도축되어 걸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린 암소의 뇌에 이미 총알을 관통시키고, 피를 뽑아내고, 작은 톱으로 발을 잘라낸 후에, 가죽을 벗겨내기 시작했을 것이다. 우리 트랙터의 긴 팔에 연결된 강철 스프레더에 다리를 걸고, 유압 제어기를 이용해서 그 무거운 생물을 들어 올린 다음 항문부터 목까지 아랫배를 썰어낼 것이다. 불과 두 시간 전만 해도 초원에서 풀을 뜯고 가족과 함께 북풍에 몸을 움츠리고 있었던 소였다.
그날 저녁은 도축장에서 보내게 된다. 도축장은 집 옆에 붙어 있는 작은 헛간으로 차고 문, 피로 얼룩진 콘크리트 바닥이 있었고, 남쪽 벽에는 장미 덩굴이 자라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고기를 저미고, 할머니는 햄버거를 만드는 그라인더 옆에 서 계셨다. 내가 할 일은 금속 저울로 고기의 무게를 재고, 흰색 정육점 포장지에 싸서 마커로 표시하는 일이었다. 대개는 친구와 가족들이 와서 일을 거들고 냉동·냉장고에 넣어둘 스테이크를 받아 가곤 했다. 할아버지는 절인 심장과 간을 넣은 그 병을 냉장고에 두셨다.
이는 내가 크는 과정에서 평범하게 겪은 일상이었다. 인격을 형성하는 시기에 죽음을 계속 목격했다고 해서 동물들의 고난에 둔감해지지는 않았다. 대신, 농장에서의 삶은 우리의 인생을 좌우하는 게 확실한 인간 이상(以上)의 세계를 더 우러러보게 되었다. 가축들을 가둬두는 출입구를 열고 닫기는 했지만, 우린 때로 가축들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도축업 하면 백정이 떠오르고 그 백정을 천시하던 사회가 떠오릅니다. 그 세상에 비하면 그래도 현재는 많이 좋아졌다고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