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코 · 면도기입니다
2023/02/01
 글 잘 읽었습니다. 대중 정치인의 삶과 말이라는 것이 그때그때 이해에 맞춰서 이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정반대의 주장에 말할 수 없는 사람을 동원하려고 하면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일전에 정의당과 노회찬 정신에 대해서 쓰셨던 칼럼 내용도 생각나고요.

  다큐의 내용이 평론의 중심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경선 대역전극에 대한 감동, 그것이 함축하는 듯한 개혁의 열망을 위주로 감상하신 거 같습니다. 다만 그 서사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광주 경선 이야기가, 언더독의 감동적인 승리 외에도 다른 요소들과 함께 설명되었을 때 좀 더 온전한 서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상집 이사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70년대 학번 모임인) 70 동지회 등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광주의 재야세력은 광주일고의 서클 ‘광랑’(향토반으로 등록), 전남대의 서클 ‘민족사회연구회’ 등에서 시작되었는데 1975년 긴급조치 위반 구속자들의 모임인 민주회복구속협의회로 일찍부터 조직화되어 있었다. 광주 경선에 필요한 조직과 자금도 이들이 만들었다.
전라디언의 굴레 | 조귀동 저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2002년 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치르면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Q씨는 “당시 광주에선 처음에 이인제 후보가 절대 강세였다. 하지만 그걸 뒤집고 ‘노풍(盧風)’을 만들어 낸 숨은 주역이 박씨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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