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약이란] 약, 그 중독성과 장악력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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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8

By 심채경 

 
인터넷 서점에 『마약의 사회사』라는 책 한 권을 주문했더니 택배 송장의 내용물 칸에 책 제목의 앞 두 글자가 인쇄되어 왔다.

“마약”

 택배 포장은 완전히 개봉된 상태였다. 가위로 조심스럽게 잘라낸 에어캡 비닐의 한쪽 테두리가 포장 안에 곱게 남겨져 있었다. 택배 기사는 의심 물품을 개봉해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일까. 달랑 책 한 권이 들어 있는 작은 택배도 일일이 확인하며 배송한다는 것을 알고 나니, 택배 기사들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도 않고 문 앞으로 물품을 슬라이딩시키는 것이 마구잡이식 배송 습관이 아니라 세련되고 효율적인 테크닉으로 느껴졌다. 그들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지키는 야경꾼이자 파수꾼 역할까지 하고 있단 말인가. 어쩌면 현관문 앞에 놓여 있던 택배를 개봉한 사람은 복도를 오가던 아파트 주민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순찰을 돌던 경비원이었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신원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나의 아주 가까운 이웃 중 누군가가 남의 집 앞에 놓인 택배 송장에 적혀 있는 ‘마약’ 두 글자에 반응하여, 우리 사회를 악으로부터 구제하는 일에 몸소 나섰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 마약이란 그런 존재다. 누구라도 발견하는 즉시 제거해 버려야 할, 때로는 자신의 것이 아닌 점유 이탈물에 손을 대서라도 그 부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마땅하고 정당한, 아주 위험한 물건 말이다.

궁핍과 중독을 먹고 자라나는 또 다른 중독

토니 데수자의 소설 『뮬』의 주인공 제임스는 그런 위험한 물건을 실어나르는 사람이다. 한때 그는 꽤 잘 나가는 칼럼니스트였다. 《에스콰이어》나 《뉴요커》와 같은 유력 잡지에 글을 쓰며 유명세를 얻고 이런저런 VIP 파티에 불려다녔다. 그러나 미국을 강타한 금융위기에 휩쓸려버린 그는 더 이상 어느 곳에서도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백화점 매니저로 일하며 일반 판매원보다 두 배가 넘는 월급을 받던 아내도 임신을 빌미로 해고당한다. 부부에게 남은 것은 재기 불능에서 오는 절망과 태어날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두려움뿐이다. 이럴 때 다가오는 큰돈의 유혹은 떨쳐버리기 어렵다.

부부는 도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아내 케이트의 고향 북부 캘리포니아의 산골 마을로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대마를 키워 파는 남자를 만난다. 모든 농작물이 그렇듯이 대마도 생산자에게서 직접 구매해 내다 팔면 돈이 된다. 운송에 위험이 따를수록 더 많이 벌 수 있다. 이를테면 시들거나 변질될 위험, 혹은 발각될 위험. 제임스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위험을 실어나르기로 한다. 남자에게서 구입한 쿠시 450그램 남짓을 차에 싣고 플로리다까지 미 대륙을 한 차례 가로질러 얻은 첫 번째 수익은 3,000달러. 아내의 실업수당 370달러로 일주일을 버텨내야 했던 생활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지나치게 매력적인 유혹이다. 그가 해야 할 일은 그저 무언가를 싣고 꽤 오래, 어느 경찰관의 눈에도 의심스럽게 보이지 않도록 교통 법규를 철저히 지키며 운전하는 것뿐. 물량을 10배로 늘린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2주에 한 번씩 10파운드의 쿠시를 싣고 한 차례의 긴 운전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그의 수중에는 3만 달러가 생겨났다. “내 아이가 헐벗는 공포, 극빈자 가족으로 살아가는 공포, 무엇보다 케이트에게 무능한 남편이라는 자괴감”을 해소하기에 충분한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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