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광기’를 증오하면서도 닮아가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증된 계정 · 다른 시각을 권하는 불편한 매거진
2023/05/06

인문학100년사 1930~1940년 (4)

▲ 1937년 뉴욕에서 나치즘을 숭배하는 일부 미국인들이 성조기와 나치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나치의 인종주의를 경멸하면서도 어느덧 그들을 닮아버렸다.

[시대적 배경] 1929년 10월 24일, 이른바 ‘검은 목요일’에 월가의 주가 폭락으로 미국 경제가 무너졌다. 세계 경제는 마비됐고, 거리는 실업자들로 넘쳐났다. 미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개입 정책에 나섰고, 독일과 이탈리아도 실업난 해소를 위해 국책 대형공사에 착수했다. 1922년 이탈리아는 파시즘의 길로 들어섰다. 독일도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비판적 지식인들과 공산주의자, 유대인 탄압에 나섰고, 스페인도 프랑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전체주의 체제로 돌아섰다. 러시아에서는 1917년 혁명의 영웅으로, 소련의 공업화와 농업화 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끈 카메네프, 지노비예프, 부하린 등의 지도자들이 레닌 사후 스탈린과 권력 투쟁을 하다가 숙청당했다(1937~1938). 반면, 프랑스에서는 1차 대전 이후 국내외적으로 움튼 파시즘에 대항하고자, 좌파전체의 연합체인 인민전선(1935~1938)이 성립됐다. 그러나 인민전선의 내부 분열로 인해 독일의 침략을 막지 못했다. 이 실패의 쓰라린 경험은 2차 대전 중 레지스탕스 운동으로 발전, 계승됐다.

 
 

 사회심리학의 기반을 다지다

 
1930년대는 독일 나치즘과 일본 전체주의가 인종주의적 편견과 증오심을 내세우면서 지구촌적 비극을 촉발한 시기였다. 그러나 ‘세계의 구원자’를 자처하고 나선 미국에서는 인종주의가 학문과 법체계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미국 학계의 주도적 지위에 오른 사회심리학자들은 인종 유형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1933년 프린스턴대학의 다니엘 캐츠(1903~1998)와 K.W.브랠리는 백인, 흑인, 독일인과 일본인 학생들의 특성을 분석했다.(1) 미국거주 백인과 독일인, 일본인들은 부지런하고 똑똑한 반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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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르몽드의 대표적인 자매지로 약칭은 "르 디플로"입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월간지로 30개 언어로 51개 국제판이 발행되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 아니 에르노,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피에르 부르디외 등 세계적 석학들이 즐겨 기고했으며, 국내에서는 한국어판이 2008년10월부터 발행되어 우리 사회에 비판적인 지적 담론의 장으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일컬어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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