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소용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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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review · 연구원 칼럼리스트
2024/06/07
2024년 6월 첫째 주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in 정독도서관
가끔 퇴근 후, 정독도서관을 찾습니다. 그곳에 들어서면, 뻥 뚫린 공간과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몸이 녹아버릴 것만 같습니다.

저녁이 완성되기 직전, 정독 도서관 앞마당은 여러 소리들로 채워집니다.

아주머니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뛰다 넘어져 우는 아이, 데이트하러 온 커플들의 웃음소리가 조화롭게 짬뽕된 곳입니다.

얼큰한 짬뽕 육수를 들이켜듯 그 소리들을 한껏 흡수하고 나면, 그 분위기에 취해 천천히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어둑해지기 전까지 남은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타임어택하듯 책을 독파해 나갑니다.

그러다가 문득, 한강 시인의 시집을 읽고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내려 버렸습니다.
한강 작가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의 첫 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에서부터요.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
밥을 먹어야지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떠나보낸 것과, 여전히 떠나보내고 있는 것에 대해서요.

그리곤 한참 동안 또다시 시를 술술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한 챕터에서 멈춰버렸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더 생각하다간 도저히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후략)

한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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