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적때기 아래의 성웅 : 《난중일기》

김터울
김터울 · 연구자, 활동가, 게이/퀴어.
2023/12/27
이순신, 노승석 옮김, 『개정판 교감번역 난중일기』, 여해, 2019[1598].

역자 노승석의 성균관대 한문학과 박사학위논문를 기초로 교감 완역한 <난중일기>를 완독했다. 전쟁 중에 쓰인 전중일기가 지금껏 전해져 마침내 한글로 읽을 수 있는 것은 후세의 복이다. 1996년 첫 방영된 드라마 <용의 눈물>이 1995년 완역된 조선왕조실록의 첫 국역본 덕에 가능했듯이, 2014년 첫 선을 보인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또한 2010년 출간된 이 난중일기의 완역본이 있기에 가능했다. 

1592년 이순신은 처음 승전한 사천 해전 때 총상을 입은 것을 두고 "중상을 입지는 않았다"고 난중일기에 짤막하게 썼다(88쪽). 이를 두고 장군의 용맹을 칭송하는 해석들이 분분한데, 이 책에 따르면 그 이듬해 이순신은 여러 서신을 통해 총상의 상처가 아물지 못해 옷을 입을 수 없음을 거듭 호소했다(116~123쪽). 나아가 1594~1595년의 일기 중 삼분지일은 몸이 좋지 않다는 내용으로 가득하고, 나머지 시기에도 이순신은 자기 몸의 어디가 안좋은지를 일기에 꼼꼼히 써놓았다. 

이순신이 자기 몸의 상태를 언급하지 않은 유일한 시기는 바로, 1597년 한양의 의금부에서 고문을 당하고 백의종군할 때부터 그해 7월 지금의 해군작전사령관 격인 삼도수군통제사에 복직하기 전까지다(452쪽). 그 사이에 이순신은 모친상을 입었고(411쪽), 모친의 장례식도 치르지 못한 채(417쪽) 성치 않은 몸으로 수군의 재건에 힘써야 했다. 고문 피해를 입기 이전부터 걸핏하면 땀이 났다는 기록, 그럼에도 사흘이 멀다하고 술을 마신 기록 등을 볼 때, 노량 해전에서 전사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아마 오래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오후에 경상우수사(원균)의 배로 가서 같이 앉아 군사의 일을 의논하였다. 연거푸 한잔 한잔 마신 것이 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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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조건을 묻다』(숨쉬는책공장,2015), 『세상과 은둔 사이』(오월의봄,2021), 『불처벌』(휴머니스트,2022,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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