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면 위험을 감수해야 할까,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

구황작물
구황작물 · 실패가 일상인 비건 지향인
2024/04/15
어릴 적 우리 집은 자가였다. 예나 지금이나 엄마는 본인의 결단으로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는데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아빠의 똥고집만 아니었다면 여러 채의 집을 굴리며 부자가 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아쉬워한다.

"내가 좀 더 대담했어야 하는데. 네 아빠 눈치 보여 못한 게 한이다."

우리는 걸핏하면 외식을 했고 틈만 나면 놀러 다녔다. 바다를, 강을, 산을 누비느라 매해 두 번 이상 피부가 감자껍질처럼 벗겨졌다. 웬만해서는 놀러다니지 않는 가족이 있다는 것도,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친구가 있다는 것도 상상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돈 때문에 자주 싸웠지만 누구도 검소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젊은 부부는 약간의 성공에 도취되어 이성을 잃었던 것일까. 아니면 시대에 흐름에 떠밀린 것일까. 그러다 IMF가 찾아왔고 아빠의 사업은 와르르 무너졌다. 부유함을 느껴본 적은 없으나 몰락의 감각은 선명했다. 가진 것은 당연했지만 잃은 것은 수치스러웠다.

생계를 책임지게 된 엄마는 4년간 노예처럼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다 사라졌다. 엄마를 믿고 태평하던 아빠는 그제야 일을 재개했다. 돈이 귀하다는 것을 깨달았을까. 그는 내가 예전처럼 돈을 써도, 쓰지 않아도 화를 냈다. 밥을 사먹으면 돈 귀한 줄 모른다 했고 라면을 끓여먹으면 밥을 사먹지 왜 이런 걸 먹냐고 언성을 높였다.

집은 점점 도망치고 싶은 곳이 되었다. 그가 어느 날 돈 오백만 원을 쥐여주며 우리 자매를 내쫓았을 때, 서럽고 놀라웠지만 한편으로 홀가분했다. 늙고 병든 아빠로부터 해방되었다! 나를 내친 것은 당신이다. 내가 아니라.

이것은 내 개인적 경험이고 가정사이다. 부끄러워 숨겼던 일들. 중년이 된 나는 이 안에서 '그때 그 시절'을 엿본다. 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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