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기

최은수 · 희망이 없다
2022/02/22
  별 게 보이지 않는 곳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다는 게 참 위안이 된다. 저녁 먹고 밤 9시 쯤, 뒷산에 내리앉은 캄캄함 속에서 비닐하우스를 응시하는 게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늦은 저녁, 비닐에 비치는 것은 비록 내 얼굴에 짙게 깔린 암흑 뿐이지만.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슬슬 편안해졌다.

  못남을 인정하고, 직시해야만 보이는 것이 있다고 엄마와 아빠는 말했지만, 사실 그간 그 뜻을 잘 몰랐다. 이제야 알겠다. 질긴 비닐 표면에 어렴풋이 비친 나의 암울함이 내 발목을 붙잡았던 것이 아니었음을. 그것은 스스로 멋대로 붙여 놓은 핑계에 불과했다는 것을.

  앞으로 열심히 살고 싶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비닐 속의 먹먹한 나에게 읊조려보면, 그 속의 나도 무어라 중얼거린다. 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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