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울타리이다

이창
이창 · 쓰고 싶은 걸 씁니다.
2022/11/17


  까치발을 들어야만 창틀 너머를 겨우 내다볼 수 있을 무렵 유난히 나를 예뻐하시던 경비원 할아버지가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인사를 드리면 가끔 사탕 같은 것을 내 손에 쥐어주시고는 그 사탕을 빨아먹으며 공동 현관으로 가는 뒷모습을 들어갈 때까지 바라봐 주셨던. 이름은 몰라도 낯은 익은 아주머니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는 이유로 살가운 대화를 나누고 놀이터에서 언제나 마주칠 수 있는 동네 친구들과 한참 놀다 들어가던 늦저녁 술 냄새 잔뜩 풍긴 채 내 머리를 쓰다듬던 옆집 아저씨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이지만 그들의 얼굴은 나의 유년의 추억 속에 생생히 각인되어 있다. 반면 지금은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를 마주쳐도 짧은 인사와 함께 어색한 기류만 감돈다. 옆집에 몇 명의 가족이 사는지, 밑집에 노부부가 사는지 신혼부부가 사는지도 잘 모르기 마련이다. 어쩌면 지금 시대에 이웃이라는 단어는 같은 공간을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닌 손바닥만한 sns 세상에 갇혀 있는 듯하다.


  ‘오베’라는 노인을 알고 있는가? 그는 고집불통에다 지금 세대에게는 틀림없이 꼰대의 전형이라고 불렸을 만한 인물로 오지랖 넓고 사납기까지 이웃으로는 최악의 조건을 가진 사람이다. 실제로 그의 삶은 언제나 주변과의 마찰로 가득했던 게 원칙주의자였던 성격 덕에 대부분 관용으로 넘기는 일에도 예외 없이 부딪히며, A가 A이지만 a도 A로 치자 따위의 말은 그의 귀엔 가당찮은 궤변이라 늘 불호령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는 고전적인 가치를 무시하는 젊은이들의 객기를 가당찮아 했고 와이셔츠맨들을 특히 싫어했다.
  무엇이 그를 동네에서 제일 괴팍하고 별난 할아버지로 만든 것일까. 앞서 고집불통이라 얘기했지만 좋게 말하면 그는 규칙을 중요시하고 정직하고 바른 길이 최고의 선택이라 여기는 인물이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철도회사 근로자로 일하던 아버지 밑에서 일을 익힌 오베는 착실한 노동의 가치를 배워가던 중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까지 잃게 된다. 유산으로 받은 낡고 허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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