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장기적 영향 - 5.18 민주항쟁과 그 생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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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 사람'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 연구가 떠올랐습니다.

서울대 경제학과 이철희 교수님이 쓰신 "Intergenerational health consequences of in utero exposure to maternal stress: Evidence from the 1980 Kwangju uprising (태아기 스트레스 노출이 후속세대 건강에 미친 영향: 1980 광주민주항쟁 사례 분석)"이라는 논문입니다.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0277953614004304

광주민주항쟁 기간 중 태아기를 보낸 여성(광주항쟁 출생아)의 출산 기록을 추적하여 분석한 결과, 이들에게서 태어난 신생아들은 다른 신생아들에 비해 출생 시 체중이 더 가벼웠고 2.5kg 이하 저체중 출산의 위험성이 더 높았습니다. 또한 광주항쟁 출생아 중 임신부들은 다른 임신부에 비해 임신기간이 유의하게 짧았으며 37주 미만 조산의 위험성이 유의하게 높았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특히 광주민주항쟁 기간이 태아기 중 중기(임신 후 3~6개월)와 겹치는 여성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즉, 광주민주항쟁을 경험한 이들의 고통이 자녀 세대를 넘어 손자 세대까지 이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전두환 사망 소식을 듣자 80년 광주에서 태어난 한 지인께서 본인 중학생 때 그렇게 가출한 사람이 많았다며, 5.18 때 태교를 잘못한 영향이라는 말이 돌았다고 전해주셨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광주에 돌던 소문은 실증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비슷한 류의 연구가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수행된 적이 있습니다(역시 이철희 교수님 연구 - 아래 그림).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0167629613001446

3년 간의 한국전쟁 중, 민간인 피해가 가장 컸던 초기 10개월 동안 태아기를 보낸 사람들은 다른 출생 코호트에 비해 성인기 교육 수준, 직업의 질, 배우자 교육 수준 등이 유의하게 낮았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예컨대 중부지방 출신 남성의 경우 1951년생은 인근 출생 코호트에 비해 교육 연수가 0.43년 더 낮았고, 전문직 직종을 가질 확률이 4.9% 더 낮았으며, 단순노무직에 종사할 확률이 4.7% 높았습니다. 

태아기 한국전쟁 경험은 고령기의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쟁 초기 10개월 동안 태아기를 보낸 사람들은 50대 말에 태어난 사람들에 비해 신체 및 정신적인 장애를 겪을 확률이 유의하게 높습니다. 예컨대 중부지방에서 출생한 남성들의 경우 1951년생은 인근 출생코호트에 비해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18% 높았고, 인지적인 장애를 겪고 있을 확률이 19% 높게 나타납니다. 

(앞의 두 연구는 다른 사회경제적 요소를 통제하거나 선택 편의를 교정한 후에도 유의하게 나타납니다.)

이런 종류의 대형 재난은 장기적인 영향을 남깁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참사 등은 다수의 사망자를 발생시킬 뿐 아니라 생존자에게 씻지 못할 상흔을 남깁니다. 

이번 코로나19 팬데믹도 다르지 않을 거라 예상해봅니다. 어쩌면 진짜 위기는 유행이 잦아든 후에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앞서 소개한 두 연구처럼 팬데믹이 직접 감염을 경험하지 않은 생존자들의 건강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또한 취약계층의 몰락, 소득의 양극화, 학습기회의 박탈, 확진과 전파를 둘러싼 사회 갈등 등등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문제들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위기 가운데에도 '재난의 장기적인 영향'이 간과되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트라우마가 가지고 올 부정적 영향의 크기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 소셜미디어에 이 연구와 함께 남긴 소회를 여기도 옮깁니다. 

"그래서 광주항쟁은,

과거의 문제일 뿐 아니라 현재의 문제고,
죽은 자의 재난일 뿐 아니라 산 자의 재난이다.

죽을 자가 죽어도 살아남은 자들의 숙제는 끝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