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딸을 구한다고 믿지만 딸이 아버지를 구한다’

김원장
김원장 인증된 계정 · 경제라고 쓰고보니 결국 사람이야기..
2024/05/09

김한길 선생의 ‘눈뜨면 없어라’를 읽은 것은 군대를 제대할 무렵이였다. 한참 뒤에야 책에 등장하는 ‘미나’가 이어령 선생의 딸 이민아목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버지 이어령 선생은 민아와 한길의 결혼을 반대했다. 이민아 목사 나이 22살 때다. ‘사랑은 맡겨두었다가 찾아쓰는 예금 통장이 아니라고’ 아버지를 설득했단다. 

김한길선생의 아버지 김철은 동경대에서 공부하고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하다 유럽으로 망명했다. 그 역시 어느 학보사에 쓴 글로 정보기관에 관심 인물이 되고 어린 부부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작정 미국으로 떠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 떠난 것이 아니라 유황의 불길을 겁내며 달아났다’.
 
‘눈뜨면 없어라(도사출판 해남)’는 미국에서 이 어린 부부가 보낸 5년의 이야기다. 눈뜨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일기처럼 담담하게 기록했다. 방탄유리가 있는 주유소에서 밤새워 일하다 흑인 손님에게 봉변을 당하거나 햄버거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지켜본 이방인들의 삶을 적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이 진짜 이방인이였다. ‘나무들을 자르려고 도끼가 숲으로 들어왔을 때 나무들은 그 도끼의 자루가 자기들 중의 하나인 것을 알고 슬퍼했다’ 

‘눈뜨면 없어라’의 마지막 페이지.  

‘애니웨이, 미국 생활 5년 만에 그녀는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신문사의 지사장이 되었다. 현지 교포사회에서는 젊은 부부의 성공사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방 하나짜리 셋집에서 벗어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의 삼층짜리 새집을 지어 이사한 한달 뒤에 그녀와 나는 결혼생활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혼에 성공했다. 그때 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버린 대가로’

어떤 소중함도 그 시간에 맞춰 이뤄져야 진짜 두껍게 소중해진다. 미국으로 떠난 젊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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