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비서관의 짜증나는 '응답하라 1988'
2024/03/15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이 기자들을 모아 놓고 협박을 했다고 한다. MBC 잘 들으라며 1988년의 중앙경제신문 오홍근 부장 테러 사건을 들먹였다는 것이다. 자기도 ‘정보사’ 출신이라며 떠벌였다니 요즘 대한민국 대통령실의 분위기가 어떤지 너무도 훤히 알 수 있다. 어떻게 언론인 출신이라는 자가 동료 후배들을 상대로 그런 '농담'을 할 수 있는지 그 자질과 상식이 의심스럽지만 어쩌랴 그가 놀고 있는 물이 이미 80년대 깡패들을 능가하는 꼴통 검사들의 고인물인 것을. 그가 언급한 사건을 한 번 톺아 보기로 한다.
.
.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던 쌍팔년의 8월 6일 오전, 중앙경제신문 오홍근 부장은 심상치않은 기운에 몸을 움츠리며 걷고 있었다. 월간중앙에 ‘오홍근이 본 사회’라는 칼럼을 연속 게재하면서 군부독재의 그림자들을 비판한 후 협박에 시달려 왔는데 얼마 전“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라는 글을 쓴 뒤에는 대놓고 그 신상을 파악하는 움직임이 감지됐고, 지금 이 순간은 몇몇의 발걸음이 저벅거리며 등 뒤를 따라붙고 있었다.
“대공에서 나왔으니 좀 갑시다.”
마침내 발걸음의 임자가 오홍근을 불러세웠고 오홍근이 신분증을 보자고 뻗댄 순간 무쇠같은 주먹이 날아들었다.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 그리고 그의 허벅지에는 길이 30센티미터의 칼자국이 나 있었다. 때려눕힌 뒤 칼질을 한 것이다. 상상해 보시라. 사람을 때려눕힌 뒤 허벅지에 칼을 꽂으며 무슨 표정을 지었을지를.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달팽이의...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비서관들이 언론을 향해 경고한것은 언론이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휘두를수있어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때 정보사령관이 이진백. 언젠가 국방장관더러 “내가 북한에 가서 무슨 일을 하고 왔는지 알아요?” 하며 정전협정 위반하고 북한에 가서 인민군 수십 명을 죽이고 온 일을 자랑하던 이진삼 의원의 동생이었다.
→ 휴전협정을 위반한건 무장공비 보내서 남한 사람 죽인 북한입니다.
https://www.khan.co.kr/people/people-general/article/201808012051015
당시 범행에 쓰인 포니2 운전병이 최근 오씨에게 전화를 걸어와 이 사실을 알려줬다.
"어느 날 자기 차가 없어져서 '내 차 어디갔느냐'고 하니까 작전을 나갔다는 거예요.
나중에 차량 점호할 때 보니까 페인트 칠을 해놓고 번호판도 바뀐 거예요"
아마도 제보자가 당시 포니2 운전병인듯합니다.
나는 오홍근이 기고했다는 "청산해야할 군사문화"가 어떤 내용인지 알고 싶습니다.
물론 군부 자체의 계획적 범행이 아니라 군장성 개인들의 일탈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 군장성은 일탈했는지 판결문을 봐야겠지만 다른 군인들이 싫어하는 오홍근을 테러하면
자신이 찬양받는다고 생각했다고 생각합니다.
별개로 오홍근도 김대중 정권에 몸 담은 후 이런 판결을 받았습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4/06/24/2004062470414.html
前국정홍보처장, 本社(조선일보)에 10억訴 패소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재판장 김상균·金庠均)는 24일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오홍근씨가 조선일보의 기사와 사설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조선일보사를 상대로 낸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오씨에게 패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지난 2002년 2월 21일과 22일 오씨가 청와대 공보수석에서 물러난 지 1개월여 만에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으로 임명된 것은 잘못된 권력운영이며 낙하산 인사라는 취지의 기사와 사설을 게재했다. 이에 오씨는, 자신은 언론탄압에 앞장선 일이 없는데도 조선일보가 자신이 이 같은 공적으로 가스공사 사장에 임명됐다는 허위 보도를 했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오씨가 국정홍보처장으로 재직 당시 언론사 세무조사를 비판하는 국내외 언론에 대하여 취한 반론보도 요구 등의 행위가 언론탄압으로 보일 여지가 없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