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핵심 요건(?!)

이영록
이영록 · Dilettante in life
2023/07/06
 link; 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33] - 재현이 실패한다면 과학인가

   여기서 논란이 되는 구절은 이것일 것이다.

 최근에는 재현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교과서 실험이나 컴퓨터 코딩은 표준화가 잘 되어 있어서 누가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지만,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나 암 연구처럼 연구자도 잘 모르는 새로운 현상을 탐구하는 실험은 표준화가 충분히 돼 있지 않아서 재현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재현의 실패가 과학에 대한 신뢰의 추락을 가져와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어쩌면 재현이 과학의 본질적 속성에서 빠질 때가 되었는지 모른다.

  '과학'이라 불리는 것들도 참으로 여럿이라, 속성이 가지가지다.  그 때문에 과학의 핵심 혹은 꼭 갖춰야 할 필요조건에 대해서는 과학자들 사이에도 아직 완전한 합의가 없다.
  여기서 우선 언급해야 하는 것은, 재현 실험이 불가능한 과학이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역사학, 인류학, 비교언어학, 진화생물학, 우주론 등 역사적으로 일어난 일들을 연구하는 학문들이다. 재현성(reproducibility)이 과학의 필수 조건이라고 한다면 이들은 학문이라 할 수 없는 셈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20세기 진화생물학의 대가인 조지 윌리엄스(George C. Williams)가 답을 준다.

 [진화생물학의] 적응론적인 설명은 키플링의 '그래서 그렇다'식 이야기와도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지만, 사실은 추리소설과 더 비슷하다...
  ... 기존의 사실을 좀더 완벽하게 설명해 주고 새로운 것을 정확하게 예견하게 해주는 새 이론이 받아들여지고 옛 이론은 쓰레기통 속에 던져진다. 1947년에 제임스 B. 코넌트(James B. Conant)가 지적한 대로 하나의 과학 이론 혹은 학설이 폐기되는 이유는 항상 더 나은 이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낙타가 어떻게 혹을 갖게 되었는가... 에 대한 설명은 하나 이상 있을 수 있다. 그중에서 관찰된 사실들을 가장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 선택된다. 탐정수사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도, 누구나 인정하는 이야기 구성의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그 이야기가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해결하고자 하는 종류의 문제에 잘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과정에 의존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예를 들어... 낙타의 혹은 진화의 방향을 잡아주는 신에 의한 것일 수 없다... [그의] 설명은 게임의 규칙을 철저하게 따랐다... 알려져 있는 과정들만 인용하였으며... 알려져 있는 모든 사실들에 부합하였다.
  또한... [그의] 설명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들을 예견하였다. 다행히도 그러한 예측은 조사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어서 다양한 탐구에 의해서 밝혀낼 수 있는 가설이 되었다.

- '진화의 미스터리(The Pony Fish's Glow)', 조지 윌리엄스, 이명희 역, 두산동아 刊, p.36~38

  이것이 역사적 과학에서 추론을 하는 방법인 것이다. 이미 아는 사실들에 부합하고, 해당 분야 학문에서 가능하다고 인정하는 추론 과정을 밟으며, 해당 가설의 예측이 조사 결과와 부합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당장 실험으로 진위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거쳐 특정 가설의 신뢰도를 결정한다.

  위에 나온 '더 좋은 이론'은 무엇인가? 부분적으로 나왔듯이, 첫 조건은 더 높은 정확도와 정밀도(higher  accuracy and precision)로 관측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고[1], 다음 조건은 더 넓은 범위를 설명하는 것이다. 빈(Wien)의 변위 법칙이나 레일리-진스의 법칙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 플랑크의 복사 분포식이다[2]. 앞 둘에서 플랑크 식을 유도하지는 못하나 - 특정 영역이나 범위에서는 둘 다 잘 맞는다 - 반대로 플랑크 식에서 앞 둘을 유도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여기서 물론 플랑크 식이 더 일반적이고 좋은 이론이다.  마지막으로, 이론의 예측(prediction)이 풍부한 것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을 처음에 내놓았을 때는 누구도 블랙홀과 중력파를 예상하지 못했었다.
  예측이 중요한 이유는 이론의 기본 가정 자체를 확인하기 매우 어려운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특수 상대성 이론이 처음 나왔을 때, 빛을 내는 물체의 운동 여부에 상관 없이 그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광속 일정의 가설을 직접 검증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이론 자체의 예측들이 실제 측정 결과들과 잘 일치하는지를 확인하여 기본 가정들을 간접 검증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예로 시간 지연이 있는데, 소립자들의 붕괴 속도를 측정하여 비교할 수 있었다.

  과학이 갖는 보편성과 신뢰도는 '누가 같은 연구를 해도, 같은 결과를 얻어낸다'서 온다.  실험을 반복할 때 (정밀도 내에서) 같은 결과를 얻는 반복 재현성(reproducibility)은 보편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핵심적이나, 실험이 어려운 과학들에서는 특정 이론의 예측이 실제와 일치하는지를 확인한다. 이를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이라 한다. 대중적으로 꽤 잘 알려진 이론들 중에도 이 둘 중 하나가 어려워서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3]
   고고학처럼 실험이 애초에 불가능한 학문에서 반증 가능성에 대한 가장 극적인 사례라면 아마 선형 문자 B일 텐데, 해독에 대한 가설 하나가 발표된 발굴된 문자 평판(Pylos tablet Ta 641)이 해당 가설을 완벽히 뒷받침해 주었기 때문이다.
source; https://en.wikipedia.org/wiki/PY_Ta_641
  아래 그림에서, 이 평판의 맨 첫 구절(파란색 네모)은 가설에 의하면 'ti-ri-po-de'로 발음되었다. 그런데 조금 뒤에 보면, 붉게 선으로 표시한 것처럼 다리가 셋인 솥(tripod cauldron)의 그림이 나와 있는 것이다.
source; https://linearbknossosmycenae.wordpress.com/2013/10/07/pylos-tablet-ta-641-1952-ventris-with-linear-b-font/
게다가 당시 미케네 문명에서는 이런 다리 셋짜리 솥의 실물이 발굴된 적도 있으니, 해독의 정확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전해진다.
source; https://en.wikipedia.org/wiki/PY_Ta_641

  漁夫

[1] 수성(Mercury) 근일점의 이동을 뉴턴의 중력법칙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더 잘 예측했다.
[2] 흑체 복사 참고(link)
[3] 예를 들면, 다중 우주 이론이 거기 해당할 것이다. 이를 어떻게 증명 혹은 반증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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漁夫란 nick을 오래 써 온 듣보잡입니다. 직업은 공돌이지만, 인터넷에 적는 글은 직업 얘기가 거의 없고, 그러기도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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