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은 권력자다. 단 숨어 있을 때만!

정숭호
정숭호 인증된 계정 · 젊어서는 기자, 지금은 퇴직 기자
2023/12/15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1884~1972)이 전임자인 32대 프랭클린 루즈벨트(1882~1945)와 크게 달랐던 것처럼 부인 베스 트루먼(1885~1982)도 루즈벨트의 부인 엘리노어와 크게 달랐다. 엘리노어는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즐겼지만 베스는 아니었다. 남편처럼 19세기 뉴욕 최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난 엘리노어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 퍼스트레이디라는 이점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남편 못지않게 활발한 대외 활동을 했으나 베스는 퍼스트레이디의 기본적 활동 외에는 가급적 기피했다. 미국 언론인 케이티 마튼은 20세기 미국 대통령 부인 12명의 삶과 남편에 대한 역할을 분석한 저서 『숨은 권력자』에서 백악관의 안주인이 엘리노어에서 베스로 바뀐 것을 두고 “미국은 가장 공적인 퍼스트레이디와 작별을 고한 바로 그날 가장 사적인 퍼스트레이디를 맞이했다.”고 표현했다. 

“대중 앞에서 여성이 할 일은 남편 옆에 조신하게 앉아 모자가 삐뚤어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것”이라는 게 베스의 믿음이었다. 트루먼이 대통령이 된 후에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더욱 부담스러워했다. 남편의 정치적 활동으로 인해 가족의 삶이 대중 앞에 드러나는 것을 싫어했으며 아내와 어머니 역할 이상을 하려 하지 않았다. 퍼스트레이디가 된 사흘 후, 루즈벨트의 장례식장에서 기자들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살피자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라며 한숨을 쉬었던 베스가 기자회견을 싫어한 건 당연했다. 백악관 생활 초기 베스는 어쩌다 회견을 해야 할 땐 서면으로 사전 질문을 받았다. 그렇게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노”라고 대답할 때가 자주 있었으며 “그런 것까지 내가 말할 필요가 있나요?”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하기도 했다. 매주 정례 기자회견을 했던 엘리노어가 백악관을 떠나면서 베스에게 이 관행은 유지해주면 좋겠다고 정중히 충고했지만 베스는 듣지 않았다. 베스는 엘리노어의 개혁적 이상과 이를 추구하는 에너지는 존경해야 하지만 모방은 존경과 다른 것이라고 보았다. 베스가 정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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