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고등학교 서울대 동문회 터뜨린 썰
2015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1학년 때는 교양 수업 위주로 수업을 들었다. 한창 '페미니즘 리부트'가 시작되던 시기였고, 비판을 하든 옹호를 하든 최소한의 지식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2학기에 여성학협동전공에서 개설한 <섹슈얼리티와 성평등>이라는 교양수업을 수강했다. 숏컷을 한 30대 후반의 박사님께서 수업을 하셨는데, 지금으로서는 비판할 만한 지점도 있겠지만 그 당시로서는 나름대로 최신의 페미니즘 이론들을 접할 수 있었다. 보수적인 지역의 남고를 졸업한 내게 상당히 큰 지적 자극을 주었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민감한 주제로 토론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무튼, 그 당시 그런 수업을 들은 덕분에 정말 최소한의 성인지 감수성을 갖출 수 있었다. 내가 평소에 하는 모든 말에 한점 부끄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런 말을 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정도의 마인드셋을 갖춘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2015년에는 지방 일반고인 우리학교에서 재수생을 포함하여 무려 4명이나 서울대에 진학시켰다. 선생님들이 의욕적으로 서울대생 인재(?)들의 네트워킹에 힘을 써 주셨고, 덕분에 'S고등학교 서울대 동문회' 카톡방에 초대되었다. 당시 20살 15학번부터 거의 아버지뻘인 선배님들까지 한 30여 명 정도가 단톡방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S고등학교와 서울대를 졸업한 선배들의 주관으로, 까마득한 15학번 후배들을 불러서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는 그런 행사들이 예정되어 있었다. 아무튼 중년 남성들로 가득한 단톡방에 초대가 되었고, 숫기 없는 20살 새내기들은 일단 선배님들께 인사부터 박고 선배들이 우리를 불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톡방을 눈팅해 보니, 선배들은 서로 골프도 자주 치고 종종 만나면서 꽤나 친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선배들은 20살 새내기들의 존재를 그리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때론 과도하게 편했는지 야동사이트 링크를 단톡방에 서로 공유하곤 했다. 특히나 톡방...
@장파덕 말씀 감사합니다. 네트워킹은 능력의 일부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봅니다. 적어도 그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 자기가 직접 동문들의 행적을 추적하고 각자의 연락처를 공유해서 모임을 정례화하고 상호부조 관계를 형성해내지 않았다면, 개인의 능력과 네트워크 가입은 서로 무관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네트워크가 개인의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이런 네트워크에 부모가 소속되어 있을 경우, 예컨대 자녀가 어느 날 갑자기 "나 웹툰 작가 하고 싶어" 라고 말을 꺼내는 순간, 부모가 곧바로 휴대폰을 들고 "어유 작가님, 잘 지내시죠? 다름이 아니라 우리 애가~" 하면서 기성 네트워크에 그 아이를 연결해 줄 수 있습니다. 기성 작가의 최고급 코칭을 받을 기회가 주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개인의 능력이 네트워크 가입을 이끄는 게 아니라, 거꾸로 네트워크 가입이 개인의 능력을 증진시키게 됩니다. (적어도 진로와 적성을 남들보다 빠르게 찾아갈 수도 있겠고요.) 이걸 못 하는 부모들은 "공부나 해!" 하고 면박을 주고, 그 자녀의 그림은 노트 뒷장을 벗어날 수가 없겠지요.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들이 굳이 모임을 유지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인생을 살다가 어느 순간 '전문가' 가 필요할 때 서로서로 부르기 위함이겠지요.
@JIINY 그냥 시민이라고 하지 않고 동료 시민이라고 말한다면 동료가 아닌 시민도 있을 수 있다는 뉘앙스로도 읽힐 수 있겠네요. 한편으로는 모든 시민이 동료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거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 이해집단들의 의견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민주정의 전제니까요.
@유영진 제가 생각하지 못한 점을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은 사실 개인의 능력과는 무관한 부분이고 특히나 어떠한 정체성에 의해서 네트워킹에서 배제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항상 경각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에 "서울대 이촌동 모임"이 있다는 말을 듣고 기가 찼던 경험이 있는데, 생각해 보니 "서울대 S고등학교 모임"역시 누군가에게는 그들만의 리그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네트워킹 실력을 능력의 일부로 보아야 할지..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민이라는 말이 행정구의 주민처럼 쓰이지만, 원래의 시민인 Citezen은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치적 권리를 가지고 있는, 또한 그 책임을 지는 공민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보다는 동료시민이 나은 것 같다고 저도 동의하지만, 그냥 시민이 아닌 동료+시민인 것에 마음이 걸렸습니다.
함께 간다는 의미일 때의 동료라면 물론 좋은 의미겠으나, 반대로 말해서 누가 우리의 동료인지를 따진다면 차별적인 의도로도 사용될 수 있어서요.
투쟁의 대상은 사회 구조여야 하지 동료 시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몇 가지 굉장히 생각을 자극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떠오르는 대로 간략히 적어보자면 본문에서 묘사된 남성 간 동성사회성(homo-sociality)은 특히 40대 이후의 남성들에게서 뚜렷하게 발견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2019년에 발간됐던 여성정책연구원 보고서 내용과도 결을 같이 합니다. 아마도 얼룩커님과 비슷한 또래의 다른 분들은 단톡방에서 벌어진 휘슬 블로잉에 대해 '발칙하다' 는 생각은 그다지 안 하셨을 것 같습니다.
또한 짚어보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서울대 동문회 네트워크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감히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가치를 갖는다는 점입니다. 이런 동문회 네트워크를 고교 선생님들이 주선해 주신다는 건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닙니다. 이 네트워크에 가입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든 그 안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자신이 획득한 사회경제적 지위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아마 그분들에겐 우리나라처럼 살기 편한 곳은 더 없겠지요.
제가 주변에 종종 했던 말이지만, 우리나라에서 큰 일은 대체로 오전 6시경 교외 스크린 골프장에 모인 6070 경상도 할아버지들의 쑥덕거림을 통해 치러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표현을 바꿔야겠습니다. 앞으로는 스크린 골프장이 아니라 단톡방으로 무대가 옮겨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말로 상대방을 변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 서울대생의 오만으로도 보입니다. 저라면 그냥 그 단톡방에서 나왔을듯...
저도 가끔 내가 올바른 사회로 나아감을 추구하는 것인지, 나의 분노를 그럴듯한 당위로 타인에게 쏟아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래서 방식의 문제에 대한 반성에 더욱 더 공감이 돼요. 그러나 동시에 파덕님의 그 용기에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우리가 동료 시민이라는 개념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소위 일컫는 학연, 지연, 혈연의 폐쇄적인 집단 대신 다른 연대 방식을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오래된 고리를 끊어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내 불쾌한 감정을 해소하는 것이 아닌 항구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게 더 중요한 목표였다면 좀 더 신중하게 상대방과 구성원들의 입장도 고려했어야 한다는 말에서 지난 시간 저의 과오도 돌아보게 되네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또 한가지 배우게 되었네요.
근데 아마 그 모임은 모르긴몰라도 쓰니님을 제외하고 기존의 기조(?)에 동의하는 사람들끼리 이어가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크툽,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니
모임해체에 대해 굳이 큰 부담을 느끼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그분들이 요즘은 어떻게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초반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런 말이나 행동을 더는 함부로 하면 안된다는 것쯤은 알게 되었을테고, 설령 그 일로 인해 배우지 못했다면 서울대일지언정 거기까지인 것이겠죠.
쓰니님이 아니었어도 분명 어디선가 그런 지적을 더 안좋은 방식으로 받게 되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큰 충격으로 나름의 자정역할을 하신 게 맞다고 보여지네요.
@JACK alooker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어요😄
옳은 말이 좋은 말로 되려면 많은 변수를 고려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지만, @장파덕 님의 다소 과격한 언급에도 건강한 모임으로 지속 가치가 있었다면 유지되었을 것이고, 아니라면 다른 어떤 이유에서건 언젠가는 소멸했을 겁니다.😉
옳은 말이 좋은 말로 되려면 많은 변수를 고려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지만, @장파덕 님의 다소 과격한 언급에도 건강한 모임으로 지속 가치가 있었다면 유지되었을 것이고, 아니라면 다른 어떤 이유에서건 언젠가는 소멸했을 겁니다.😉
@장파덕 말씀 감사합니다. 네트워킹은 능력의 일부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봅니다. 적어도 그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 자기가 직접 동문들의 행적을 추적하고 각자의 연락처를 공유해서 모임을 정례화하고 상호부조 관계를 형성해내지 않았다면, 개인의 능력과 네트워크 가입은 서로 무관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네트워크가 개인의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이런 네트워크에 부모가 소속되어 있을 경우, 예컨대 자녀가 어느 날 갑자기 "나 웹툰 작가 하고 싶어" 라고 말을 꺼내는 순간, 부모가 곧바로 휴대폰을 들고 "어유 작가님, 잘 지내시죠? 다름이 아니라 우리 애가~" 하면서 기성 네트워크에 그 아이를 연결해 줄 수 있습니다. 기성 작가의 최고급 코칭을 받을 기회가 주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개인의 능력이 네트워크 가입을 이끄는 게 아니라, 거꾸로 네트워크 가입이 개인의 능력을 증진시키게 됩니다. (적어도 진로와 적성을 남들보다 빠르게 찾아갈 수도 있겠고요.) 이걸 못 하는 부모들은 "공부나 해!" 하고 면박을 주고, 그 자녀의 그림은 노트 뒷장을 벗어날 수가 없겠지요.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들이 굳이 모임을 유지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인생을 살다가 어느 순간 '전문가' 가 필요할 때 서로서로 부르기 위함이겠지요.
내 불쾌한 감정을 해소하는 것이 아닌 항구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게 더 중요한 목표였다면 좀 더 신중하게 상대방과 구성원들의 입장도 고려했어야 한다는 말에서 지난 시간 저의 과오도 돌아보게 되네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또 한가지 배우게 되었네요.
근데 아마 그 모임은 모르긴몰라도 쓰니님을 제외하고 기존의 기조(?)에 동의하는 사람들끼리 이어가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크툽,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니
모임해체에 대해 굳이 큰 부담을 느끼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그분들이 요즘은 어떻게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초반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런 말이나 행동을 더는 함부로 하면 안된다는 것쯤은 알게 되었을테고, 설령 그 일로 인해 배우지 못했다면 서울대일지언정 거기까지인 것이겠죠.
쓰니님이 아니었어도 분명 어디선가 그런 지적을 더 안좋은 방식으로 받게 되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큰 충격으로 나름의 자정역할을 하신 게 맞다고 보여지네요.
@유영진 제가 생각하지 못한 점을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은 사실 개인의 능력과는 무관한 부분이고 특히나 어떠한 정체성에 의해서 네트워킹에서 배제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항상 경각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에 "서울대 이촌동 모임"이 있다는 말을 듣고 기가 찼던 경험이 있는데, 생각해 보니 "서울대 S고등학교 모임"역시 누군가에게는 그들만의 리그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네트워킹 실력을 능력의 일부로 보아야 할지..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민이라는 말이 행정구의 주민처럼 쓰이지만, 원래의 시민인 Citezen은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치적 권리를 가지고 있는, 또한 그 책임을 지는 공민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보다는 동료시민이 나은 것 같다고 저도 동의하지만, 그냥 시민이 아닌 동료+시민인 것에 마음이 걸렸습니다.
함께 간다는 의미일 때의 동료라면 물론 좋은 의미겠으나, 반대로 말해서 누가 우리의 동료인지를 따진다면 차별적인 의도로도 사용될 수 있어서요.
투쟁의 대상은 사회 구조여야 하지 동료 시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몇 가지 굉장히 생각을 자극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떠오르는 대로 간략히 적어보자면 본문에서 묘사된 남성 간 동성사회성(homo-sociality)은 특히 40대 이후의 남성들에게서 뚜렷하게 발견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2019년에 발간됐던 여성정책연구원 보고서 내용과도 결을 같이 합니다. 아마도 얼룩커님과 비슷한 또래의 다른 분들은 단톡방에서 벌어진 휘슬 블로잉에 대해 '발칙하다' 는 생각은 그다지 안 하셨을 것 같습니다.
또한 짚어보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서울대 동문회 네트워크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감히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가치를 갖는다는 점입니다. 이런 동문회 네트워크를 고교 선생님들이 주선해 주신다는 건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닙니다. 이 네트워크에 가입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든 그 안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자신이 획득한 사회경제적 지위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아마 그분들에겐 우리나라처럼 살기 편한 곳은 더 없겠지요.
제가 주변에 종종 했던 말이지만, 우리나라에서 큰 일은 대체로 오전 6시경 교외 스크린 골프장에 모인 6070 경상도 할아버지들의 쑥덕거림을 통해 치러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표현을 바꿔야겠습니다. 앞으로는 스크린 골프장이 아니라 단톡방으로 무대가 옮겨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말로 상대방을 변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 서울대생의 오만으로도 보입니다. 저라면 그냥 그 단톡방에서 나왔을듯...
저도 가끔 내가 올바른 사회로 나아감을 추구하는 것인지, 나의 분노를 그럴듯한 당위로 타인에게 쏟아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래서 방식의 문제에 대한 반성에 더욱 더 공감이 돼요. 그러나 동시에 파덕님의 그 용기에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우리가 동료 시민이라는 개념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소위 일컫는 학연, 지연, 혈연의 폐쇄적인 집단 대신 다른 연대 방식을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오래된 고리를 끊어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JACK alooker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