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왜?

라이뷰

뇌는 왜?

뇌질환 뒤의 숨은 조력자, 별세포의 두 얼굴

집현네트워크
집현네트워크 인증된 계정 · 더 나은 지식기반 사회를 지향합니다.
2024/12/31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를 사랑한다. 부부가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잘 먹이고 입히며 애지중지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라도록 돕는다. 아이가 좀 더 자라면, 부모는 자녀가 미래에도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풍부한 교육 자원을 제공하고자 온 힘을 기울인다. 부모의 지원은 자녀에게 도움을 주고, 아이는 성장에 필요한 지식 및 경험을 제공받는다. 
 
그러나 현재 한국 교육 문화의 과도한 대입 경쟁과 사교육 과열 분위기에 휩쓸려, 일부 부모는 자녀의 아이에게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생활 전반을 통제하기도 한다. 자녀가 경쟁에 밀리지 않도록 도우려는 의도에서 시작한 행동이지만, 오히려 아이에게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주고 결과적으로 자기 주도성과 사회성, 회복탄력성을 충분히 기르지 못하게 해 정서적 어려움을 겪게 한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선한 의도로 시작된 많은 노력이, 오히려 너무 단단한 보호막을 쳐버리는 꼴이 돼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가로막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우리 뇌에서 별세포(astrocyte, 성상세포)가 하는 역할은 부모가 자녀 인생에 개입하는 모습과 많이 닮았다. 세심한 보조와 균형 잡힌 지원은 성장을 돕지만, 과잉 반응과 지나친 간섭은 불필요한 장벽이 돼 신경세포의 원활한 연결과 소통을 막는다. 별세포가 건강해야 신경세포를 적절히 도울 수 있고, 건강한 뇌기능도 유지할 수 있다 (그림 1).
[그림 1] 뇌에서 별세포가 하는 역할은 부모가 자녀 인생에 개입하는 모습과 닮았다. 세심한 보조와 균형 잡힌 지원은 성장을 돕지만, 과잉 반응과 지나친 간섭은 불필요한 장벽이 돼 신경세포의 원활한 연결과 소통을 막는다. 신인철


뇌의 항상성 유지 세포, 별세포

뇌는 다양한 세포로 이뤄져 있다. 신경세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신경세포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비신경세포인 교세포(glia) 역시 신경세포와 비견할 만큼 풍부하다 [표 1].
 
[표1] 교세포의 종류와 특징
비중만 봐도 교세포가 뇌 기능 유지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별세포를 비롯한 교세포는 신경세포를 구조적으로 지지하고 영양분을 공급하는 단순한 보조자로 여겨졌다. 실제로 교세포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글리아(glia)는 풀(glue)에서 비롯됐다. 신경세포를 붙잡아 두는 접착제 정도로만 간주됐다는 뜻이다.
 
별세포가 뇌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불과 수십 년 전의 일이다. 20세기 초,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은 골지 염색법을 통해 뇌를 관찰하던 중, 다양한 뇌세포 가운데 신경 세포가 선명하게 염색되는 현상을 바탕으로 뇌의 기능적 단위를 신경세포로 보는 뉴런 이론(neuron doctrine)을 제안했다. 이후 신경세포 사이 시냅스의 존재가 밝혀지고 신경세포 간 신호전달 기전이 중요하게 부각되면서, 신경세포 중심의 관점은 신경과학 연구 전반을 이끌어가는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았다. 이른바 ‘뉴로센트릭 뷰(neurocentric view)’가 뿌리내린 것이다. 심지어 뉴로글리아(neuroglia)를 처음 보고한 루돌프 피르호조차 교세포를 단순히 ‘조직 사이를 연결하는 물질(connecting substances)’로 서술했다.
 
이처럼 과거에는 교세포의 역할을 접착제 정도로만 여겼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교세포의 복합적이고 정교한 기능을 토대로 새로운 뇌 기능을 해석하는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다. 또, 이를 통해 신경세포 중심의 관점을 넘어 다차원적으로 뇌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교세포 가운데 가장 수가 많은 것은 별세포다. 이름 그대로 별처럼 생긴 이 세포는 뇌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은 신경세포 사이를 채우며, 단순히 물리적 지지대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뇌 환경을 능동적으로 조절한다. 예를 들어,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탐산(glutamate)을 신속히 흡수하고 분해해, 과도한 흥분성 신호가 뉴런 손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방지한다. 또한 별세포의 세포 외 환경 칼륨(K+) 이온을 적절하게 흡수해 시냅스 주변 이온 농도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함으로써 신경 전달의 정확성을 보장한다 (그림 2). 
[그림 2] 별세포는 뇌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신인철


나아가 별세포는 신경계의 물리적·화학적 경계를 구성하는 뇌혈관장벽(blood-brain barrier)의 형성에도 중요한 기여를 한다. 별세포 가지 말단의 ‘엔드풋(end-foot)’ 구조는 뇌혈관과 직접 맞닿아 있으며, 혈류량을 미세하게 조절해 외부나 혈관을 통해 들어오는 다양한 물질이 무분별하게 뇌로 침투하는 것을 막고, 뇌 안팎의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이런 항상성 유지 기능은 별세포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뇌 환경 전반을 관리하는 적극적 주체임을 시사한다. 실제로 발달기 아동의 뇌 성장 과정이나 신경회로 형성 과정, 학습과 기억 형성 과정, 시냅스 가소성(plasticity)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별세포가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의 기능과 기전에 관한 연구는 현대 신경과학의 핵심 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별세포의 기능 덕분에 뇌는 외부의 다양한 자극에도 균형 있는 반응을 유지할 수 있으며, 고도의 인지 기능 역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병리 환경에서 변화하는 별세포, 반응성 별세포

만약 뇌 환경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떨까. 뇌질환을 유발하는 물질이 뇌 안에 생성되거나 독성물질에 노출되는 경우, 외상성 뇌 손상을 입는 경우 등 위기 상황이 닥치면, 평소 뇌기능을 돕던 성상세포는 모양과 기능에 변화를 일으키며 반응성 별세포(Reactive Astrocyte)로 변신한다[3]. 별세포는 뇌와 신경세포에 해가 될 수 있는 독성 물질을 흡수해 제거하고 신경세포와 뇌를 보호하고자 노력한다.
 
예를 들어, 알츠하이머 치매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독성 물질인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양이 많아지면 축적이 시작되며 치매가 진행된다. 별세포는 이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흡수해 분해하는 기전을 작동시킨다. 실험을 통해 별세포의 독소 단백질 분해 기전을 억제하면, 뇌 안에서는 아밀로이드 플라크(덩어리)의 축적이 더 가속화되고 치매 증상이 악화된다[1]. 알츠하이머 병 이외에도 파킨슨병, 우울증 등 다양한 신경정신질환에서 반응성 별세포가 관찰되고 있다.
 
별세포가 이렇게 고분고분 독성 물질을 해치우며 얌전히 활동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게도, 별세포는 독성 물질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세포 대사를 과활성화시키고, 활성산소 등 대사 산물 및 염증 물질을 과생성하는 문제가 있다. 세포의 가지가 두꺼워지고 개수가 많아지며 구조적으로 비대화된다. 별세포의 말단 세포막은 매우 정교하고 복잡하게 신경세포의 신경돌기(Neurite) 및 시냅스와 접합돼 있는데, 비대화 과정을 거치면 시냅스의 구조적 지지 또한 변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평상시 신경세포를 안정적으로 받쳐주고 기능을 돕던 별세포의 근간이 흔들린다. 신경세포가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지고, 대사 산물이 발생하며 신경세포의 활성이 감소한다. 큰 문제지만, 만약 독성 물질을 분해하지 않고 그대로 둘 경우에는 신경세포 및 뇌에 가해지는 결과는 훨씬 더 크고 심각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림 3).
 
[그림 3] 별세포는 독성 물질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세포 대사를 과활성화시키고, 활성산소 등 대사 산물 및 염증 물질을 과생성하는 문제가 있다. 신인철


반응성 별세포 회복, 가능할까

일시적으로 독성 물질을 분해하는 역할을 완수하고 나면, 별세포는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려고 노력한다. 비대화된 별세포는 다시 날씬한 구조로 돌아오며, 평소처럼 신경세포를 잘 도와주는 시스템을 가동시킨다.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 등으로 한번 크게 앓고 난 뒤 명확한 사고가 어려워지고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 같은 ‘뇌안개(브레인포그)’ 현상도 이런 과정에서 나타난다. 우리 뇌가 외부 병원체가 원인이 돼 반응성 별세포 및 뇌염증을 유발한 것이다. 하지만, 뇌는 이에 대처하는 시스템 역시 갖고 있고, 따라서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회복한다. 브레인포그 역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대부분 사라진다.
 
신경세포는 매우 분화된 형태의 세포다. 손상되거나 세포 사멸의 길로 가면 재생하거나 다시 되돌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신경계는 서로 정교하게 연결돼 우리의 행동을 조절하고 생각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내장 기관이 적절히 기능하는 데에도 필수적인 기관이다. 이 때문에 뇌는 신경세포의 기능이 외부의 여러 위협에 대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완충 시스템을 발달시킨 셈이다.   
 
 

별세포의 과잉 활성화가 문제를 악화시킨다

감기에 걸리면, 우리는 무리하지 않으며 몸이 감기에서 회복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준다. 만약 회복되기 전에 다른 바이러스나 세균의 감염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면 몸이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별세포도 마찬가지다. 외부 유해 물질로부터 반응성 별세포로 변했지만, 다시 회복하기 위한 시간 및 환경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또는 매우 강한 강도로 뇌가 유해 요소에 노출된다면, 반응성 별세포는 더이상 회복하기 어려운 단계로 넘어간다. 활성산소가 증가하고, 별세포가 원래 갖고 있지 않은 특성인 분열하는 특성을 갖게 된다. 
 
원래 별세포가 뇌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모양 및 구조적 기능을 생각했을 때, 별세포의 분열은 매우 큰 변화다. 별세포는 뇌 안에서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신경세포의 시냅스와 구조적으로 매우 정교하게 맞닿아 있다. 그런데 세포가 분열하면 이런 별세포의 영역이 큰 변화를 겪는다. 뇌의 미세 구조는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밖에 없다.
 
별세포가 이렇게까지 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신경세포와 미세 환경을 모두 희생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하는 것이 있어서다. 
 
뇌졸중이 발생했거나 외상에 의한 직접적인 뇌 손상이 발생한 경우를 생각해보자. 손상된 뇌 부위의 주변은 경보가 울리는 화재 현장처럼 된다. 손상으로 더 이상 가망이 없는 신경세포를 처리하기 위해 미세교세포가 활성화되고 과도한 염증 반응으로 손상을 입지 않은 뇌조직까지 염증 물질이 퍼져나간다. 혈관의 면역세포를 불러들여 상황을 악화시킨다. 이를 물리적으로 막기 위해 손상 부위 주변은 단단한 신경교 흉터(glial scar)를 형성하는데, 여기에 별세포 또한 반흔 형성 반응성 별세포(scar-forming reactive astrocyte)로 변화하며 분열하는 성질을 갖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흉터 장벽은 신경세포가 재생해 새로운 연결을 형성하는 데 물리적인 장애물로 작동한다.
 
알츠하이머 병 초기 단계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증가하면서 반응성 별세포가 형성된 경우, 이들이 회복할 겨를도 없이 바이러스 감염, 우울증 등 뇌염증을 일으키는 상황과 결합해도 문제가 된다. 뇌 손상의 교세포 반흔과 마찬가지로 분열하는 반응성 별세포로 전환되고 비가역적인 상태로 접어든다. 이와 같은 별세포의 과잉 활성화는 대사 균형 유지에 실패하고 신경세포 손상을 가속화하며 치매 증상을 악화시킨다[2]. 
 
 

치료제 개발의 표적이 되다

비가역적 변화를 겪는 반응성 별세포로 전환되기 이전의, 회복 가능한 반응성 별세포는 치매 치료제 개발의 중요한 표적이 될 수 있다[4].
 
최근 알츠하이머 치매의 치료를 위해 승인된 항아밀로이드 항체 의약품 신약 레카네맙(Lecanemab, 상품명 레켐비(Leqembi))은 신경세포 주변에 쌓이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제거함으로써 질병 진행을 늦추는 새로운 치료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2022년 11월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에 발표된 레카네맙의 3상 임상시험(Clarity AD) 결과에 따르면, 레켐비를 18개월간 투여한 그룹은 위약군에 비해 임상치매평가척도 합산점수(CDR-SB, Clinical Dementia Rating-Sum of Boxes: 0, 정상; 0.5, 치매가 의심스러움(questionable); 1.0, 경증치매(mild); 2.0, 중등도치매(moderate); 3.0, 중증치매(severe))가 0.45점 낮았다[5]. 
 
하지만 이는 인지기능 저하 속도가 약 27% 감소한 것이다. 치매의 ‘회복’이 아니라 인지기능 저하를 늦추는 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했다는 뜻이다. 놀라운 점은 인지기능 개선 효과가 비교적 작았던 데 비해,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뇌 영상을 통해 측정한 아밀로이드 플라크의 양은 ‘아밀로이드 음성’에 가까운 수준까지 상당히 효과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뇌 내 아밀로이드 축적이 알츠하이머 발병과 진행에 중요한 요소는 맞지만, 그것만으로 질환의 모든 측면을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에 더해 ‘ARIA(Amyloid Related Imaging Abnormalities)’라고 불리는 부작용(뇌 부종 및 뇌출혈)이나 투여 비용 등, 항아밀로이드 항체 치료제가 갖는 현실적 한계도 무시하기 어렵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에는 뇌 염증 반응을 주도하고 뇌 환경을 재구성하는 반응성 별세포에 대한 연구가 치료 표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별세포가 신경세포와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며, 노폐물 제거나 영양소 공급, 뇌의 면역 및 염증 작용을 크게 좌우한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치매에서 별세포가 병리적 환경에 반응해 어떤 기능적 변화를 일으키는지 정확한 분자 기전을 밝히고, 신경세포 손상과 질환 진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규명하는 연구는 새로운 예방 및 치료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치매 병리에서 아밀로이드 제거를 넘어, 실제 뇌 항상성을 유지하고 염증 반응을 제어하는 등 보다 폭넓은 기전을 고려하는 통합적 치료법을 모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글 전희정 연세대 약대 교수
그림  신인철 한양대 생명과학과 교수
기획  사단법인 집현네트워크
시리즈 기획 강봉균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및사회성연구단 공동 연구단장(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 박형주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
편집 윤신영 alookso 에디터


이 프로그램은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재원으로 운영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성과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저소득 소외계층의 복지 증진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지식기반 사회를 향한 과학자·전문가 단체입니다. 상호 교류를 통해 지식을 집산·축적하는 집단지혜를 추구합니다. alookso와 네이버를 통해 매주 신종 감염병, 기후위기, 탄소중립, 마이크로비옴을 상세 해설하는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46
팔로워 1.4K
팔로잉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