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평범성이냐, 모두를 속인 연극이냐... 세기의 재판 영화가 되다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4/01/13
지난 100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재판은 무엇일까.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 무엇이냐로 귀결되기도 하는 이 질문에는 여러 가지 답이 나올 수 있을 테다. 그럼에도 결코 빠지지 않는 선택지가 바로 이스라엘 법정의 아이히만 재판이 되겠다. 당대 재판의 전 과정이 생중계 됐을 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호주와 남미 등 30여 개 나라에 촬영분을 보내어 편집 상영토록 했으니 그 관심이 얼마만큼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서 친위대 장교로 활약했던 인물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지시를 받아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유태인 학살 작업의 실무 총책을 맡았다. 600만 명 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태인 학살, 즉 홀로코스트의 주동자로 지목됐고 그 수법의 악랄함 가운데 상당부분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아이히만은 전후 미국의 포로가 되었으나 카톨릭 교회의 도움을 받아 아르헨티나로 도주했고, 10여 년 간을 무탈하게 생활한다.
 
그러나 그는 나치 잔당으로서의 정치적 행보를 멈추지 않았고, 그를 추적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의해 타국에서 불법으로 납치 체포되기에 이른다. 특정 국가 첩보기관이 타국에서 요인을 납치하고 암살하는 일이 종종 행해지긴 하였으나, 아이히만의 사례에서처럼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해외에 중계하며 심판한 사례가 흔치 않다는 점에서 윤리적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이로부터 예루살렘에서 아이히만의 재판이 열리고, 그는 마침내 사형을 언도받아 1962년 교수대에서 사망하기에 이른다.
 
▲ 아이히만 쇼 포스터 ⓒ (주)디스테이션
 
세기의 재판, 영화가 되다

흔히 아이히만은 사회학자 한나 아렌트의 <뉴요커> 취재 및 그를 바탕으로 한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오늘의 대중과 만난다. 사실 이보다는 책의 요체라 해도 좋을 '악의 평범성'이라는 언급으로 대중에게 기억된다. 대단한 악마가 아닌,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개인 아이히만이 특정한 상황에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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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3급 항해사.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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