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월북했을까
2024/02/26
그들은 왜 월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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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이후 식민지로 전락했지만 한반도 사람들은 몸을 써서 하는 스포츠에 관한한 지배자 일본인들에 뒤지지 않았다. 인구로 보나 습득한 세월로 보나 일본의 저변에 비하면 좁고도 얕았으나 특출한 이들과 우수한 팀들이 계속 나왔고, 그 부족한 베이스의 한계를 뚫고 전일본을 제패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비록 한 번 영화로는 망했지만 <자전거 왕 엄복동>의 경우는 충분히 영화화될 만한 소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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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무찌른(?) 승리도 승리거니와, 심판이 농간을 부리자 본부석으로 뛰어들어 뒤엎어 버린 사연이며, 해방 후 몰락한 중늙은이로 ‘자전거 도둑’으로 검사 앞에 끌려가는 후일담에 이르기까지 드라마틱한 사연이 많다. 베를린의 영웅 손기정 남승룡의 스토리는 영화나 드라마가 왜 만들어지지 않을까 궁금한 지경이고, 전일본을 제패한 연희전문과 보성전문 농구팀이나 경성축구단의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1935년 경성 축구단은 그야말로 일본 최강이었다. 이 해에 일본은 베를린 올림픽을 위한 선수 선발전을 겸하여 전일본 축구 선수권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 참석한 경성 축구단은 가공할 전력을 과시하면서 일본의 출전팀을 연신 깨뜨리며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자 일본은 올림픽 선발은 메이지 신궁 대회까지 치르고 하겠다고 딴전을 피웠다. 그런데 경성축구단은 이 대회마저 우승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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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경성축구단이 일본 올림픽 대표팀으로 나가든지 (1964년 도꾜 올림픽 일본 여자 배구팀이 사실상 대일본방적 실업팀이었듯이) 조선 선수가 절반쯤은 포함돼야 옳았을 것이다. 실제 조선 축구 선수들을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일장기를 다는 건 기분 뭐 같더라도 올림픽에는 나가겠구나. 그런데 막상 일본 축구협회의 발표는 천만 뜻밖이었다. 조선 선수는 단 두 명만 발탁된 것이다. 김영근과 김용식. 격노한 경성축구단이 앞으로 일본 대회에 선수 파견을 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할 정도의 불...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장유유서 문화의 장점과 단점을 생각하게 하네요. 저도 직급은 같은데 장유유서 때문에 억지 상관 대접 해줘야 하는 곳에서 근무한적이 있어 참....묘한 감상을 들게 하네요. 웃을 수도 울수도 없는 이 느낌을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이강인 손흥민 문제는 판결문을 봐야 알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947년에 사망한 KOC 임원은 조선체육회 부회장이자 올림픽대책위원회 부회장인 전경무로 스톡홀롬에서 열릴 IOC 회담 참가를 위해 가장 노력을 했으며 이에 설득된 미군정이 비행기를 내주었으나 이 비행기가 일본에서 추락하여 사망하였습니다. 여운형의 유일한 육성 녹음도 이때 조선체육회 회장으로써 전경무의 장례식에서 한 추모사입니다.
한국 최초의 복권이 런던 올림픽 참가 경비를 위한 목적이였고 이때 이 복권에 인쇄된 인물이 전경무죠.
1947년에 사망한 KOC 임원은 조선체육회 부회장이자 올림픽대책위원회 부회장인 전경무로 스톡홀롬에서 열릴 IOC 회담 참가를 위해 가장 노력을 했으며 이에 설득된 미군정이 비행기를 내주었으나 이 비행기가 일본에서 추락하여 사망하였습니다. 여운형의 유일한 육성 녹음도 이때 조선체육회 회장으로써 전경무의 장례식에서 한 추모사입니다.
한국 최초의 복권이 런던 올림픽 참가 경비를 위한 목적이였고 이때 이 복권에 인쇄된 인물이 전경무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