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윤리/ 애도와 멜랑꼴리

빈틈 · 빈틈입니다. 어쩌면 비틈일지도.
2023/08/06
1. 양심과 윤리 

우리들 가운데 의로운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닌 타인들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그리고 자신들이 연루됐다는 생각 때문에 가책과 수치심이라는 고통을 느꼈다. 왜냐하면 자신의 주위와 눈앞, 그리고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씻어낼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인간 종, 우리는 엄청난 고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고통은 어떤 비용이나 노력도 필요치 않은, 무에서 생겨나는 유일한 힘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 프리모 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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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에서 양심이란게 무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뭘까. 공동체로 연장된 나의 윤리적 판단과 고통을 양심으로 본다면, 개별자인 나 혼자만의 양심은 생각해보기 어려운거 같다. 이때는 양심이라기 보다 '나의 윤리'라는 단어가 선택될것 같다. 양심이란 공동체가 지켜야할 최소한도의 선이며 공동체의 개인에게도 지워지는 의무 같은거랄까. 예수는 양심이 있었을까? 예수는 자신만의 윤리에 충실하려 한 이방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신약의 예수는 신과의 약속을 어겨서 생겨난 죄(이게 양심의 어근같은게 아닐까)를 없애는 또는 양심의 굴레를 벗기는 새로운 윤리를 제시한다고 읽어볼수도 있겠다.


2. 애도와 멜랑꼴리 / 귀신과 신 

프리모레비는 고통과 가책의 이유를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느꼈다는 데에 두고 있다. 만일 일어난 일이 돌이킬 수 있는 것이었다면 상처가 그리 깊지 않았을거다. 돌이킬 수 없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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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게 별로 없네요 가끔 글쓰기를 하는데 노자 장자 조사선 화두 라캉 헤겔 들뢰즈 태극권 정좌 명상 등과 같은 명사를 남용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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