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윤리/ 애도와 멜랑꼴리
1. 양심과 윤리
우리들 가운데 의로운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닌 타인들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그리고 자신들이 연루됐다는 생각 때문에 가책과 수치심이라는 고통을 느꼈다. 왜냐하면 자신의 주위와 눈앞, 그리고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씻어낼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인간 종, 우리는 엄청난 고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고통은 어떤 비용이나 노력도 필요치 않은, 무에서 생겨나는 유일한 힘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 프리모 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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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에서 양심이란게 무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뭘까. 공동체로 연장된 나의 윤리적 판단과 고통을 양심으로 본다면, 개별자인 나 혼자만의 양심은 생각해보기 어려운거 같다. 이때는 양심이라기 보다 '나의 윤리'라는 단어가 선택될것 같다. 양심이란 공동체가 지켜야할 최소한도의 선이며 공동체의 개인에게도 지워지는 의무 같은거랄까. 예수는 양심이 있었을까? 예수는 자신만의 윤리에 충실하려 한 이방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신약의 예수는 신과의 약속을 어겨서 생겨난 죄(이게 양심의 어근같은게 아닐까)를 없애는 또는 양심의 굴레를 벗기는 새로운 윤리를 제시한다고 읽어볼수도 있겠다.
2. 애도와 멜랑꼴리 / 귀신과 신
프리모레비는 고통과 가책의 이유를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느꼈다는 데에 두고 있다. 만일 일어난 일이 돌이킬 수 있는 것이었다면 상처가 그리 깊지 않았을거다. 돌이킬 수 없을 때...
우리들 가운데 의로운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닌 타인들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그리고 자신들이 연루됐다는 생각 때문에 가책과 수치심이라는 고통을 느꼈다. 왜냐하면 자신의 주위와 눈앞, 그리고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씻어낼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인간 종, 우리는 엄청난 고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고통은 어떤 비용이나 노력도 필요치 않은, 무에서 생겨나는 유일한 힘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 프리모 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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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에서 양심이란게 무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뭘까. 공동체로 연장된 나의 윤리적 판단과 고통을 양심으로 본다면, 개별자인 나 혼자만의 양심은 생각해보기 어려운거 같다. 이때는 양심이라기 보다 '나의 윤리'라는 단어가 선택될것 같다. 양심이란 공동체가 지켜야할 최소한도의 선이며 공동체의 개인에게도 지워지는 의무 같은거랄까. 예수는 양심이 있었을까? 예수는 자신만의 윤리에 충실하려 한 이방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신약의 예수는 신과의 약속을 어겨서 생겨난 죄(이게 양심의 어근같은게 아닐까)를 없애는 또는 양심의 굴레를 벗기는 새로운 윤리를 제시한다고 읽어볼수도 있겠다.
2. 애도와 멜랑꼴리 / 귀신과 신
프리모레비는 고통과 가책의 이유를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느꼈다는 데에 두고 있다. 만일 일어난 일이 돌이킬 수 있는 것이었다면 상처가 그리 깊지 않았을거다. 돌이킬 수 없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