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의 지엄함 - 권헌익의 한국전쟁론 변주하기

Orca
Orca · 제국에 관한 글쓰기
2024/03/25
권헌익은 <전쟁과 가족>의 도입부에서, 헤겔로 대표되는 서양철학 전통이 친족과 국가를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고, 친족을 자연적인 것, "정치 이전의 실체"로 여기는 경향에 대해,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근대 인류학의 전통[1]"에서는 친족이야말로 "뚜렷한 정치적 개념"이며, 친족 관계가 주권적 주체를 대신하여 정치이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상식이라고 말한다[2]. 후자에서 선배 인류학자들의 입을 빌려 권헌익이 세우는 입론은, "정치 이전의 실체" 일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게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친족은 그게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권헌익 자신의 입장은? "이 책에서 언급되는 친족개념은 이 중 후자에 가깝긴 하지만 정치이론의 이 두 전통 모두와 관련이 있다." 즉 '헤겔철학 전통'과 '근대인류학 전통'을 필요에 따라 혼용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권헌익은 인류학자이기 때문에 다르게 표현하면, 헤겔철학 전통 위주의 전쟁사 서술을 근대인류학 전통으로부터 보충하겠다는 것이라고도 할 수도 있겠다. 
'혼용'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데, 실상 저자의 입장은 양자 모두를 비판하게 되기 때문이다. 친족은 정치 이전의 실체로 분리해버리고 정치적 상황 전체를 주권적 주체들로 이론화하는 헤겔 철학이든, 헤겔 철학에서 주권적 주체가 차지하는 위치에 친족을 가져다 놓은(물론 이렇게까지 표현하지는 않는다), (헤겔적 국제정치이론, 혹은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의) 대안이론으로서의 근대 인류학 전통이든 간에 말이다. 저자는 그들의 양자구도와 다른 자신만의 양자구도를 제시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첫째, 국가가 '친족의 윤리' 관념을 전유한다. 둘째, 친족의 공간은 전쟁(내전)의 공간과 구분된다. (이것은 불가피하게 헤겔을 연상시킨다) 두 번째에 관하여, 그러나 전쟁의 공간과 구분되는 친족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데에까지 나아가지는 않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존재할 수도 있고, '방법으로서의 친족'일 수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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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6년, 방공통제사 3년, 석사 생활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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