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마! 교직생활] 5장. 나는 살아있다. 잘 견딘 덕이다.

류재연
류재연 인증된 계정 · 정교사, 기간제 교사, 그 후 교수
2024/04/06
사직 철회를 교무처장이 나에게 요구했을 때, 처장실에는 늘 나와 교무처장 둘뿐이었다. 그랬기에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객관적인 증거가 없었다. 그가 거짓말을 하면 나만의 일방적인 주장이 된다. 객관적 사실을 내놓지 못하면 나는 우스운 놈이 된다. 우습지 않으려면 교무처장과 대화한 증거를 제출하거나, 사직서를 제출했던 처음 맘으로 학교를 나가면 된다.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복수심이 끓어올랐다. 내가 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이라고 표현한 것을 문제 삼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그러자 술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총학생회장을 중징계하겠다고 했던, 그들의 저의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행정소송을 하고 처음으로 상대 변호사와 함께 판사를 만나는 날이었다. 내 변호사가 일어나서 걸어오는 상대 변호사에게 인사를 했다. 무슨 사이냐고 묻자, 자신에게 실무를 가르쳐준 분이라고 했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상대 변호사는 내 사건의 판사와 함께 근무한 경력도 있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재판에서 내가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비아냥과 손가락질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잘난 척하며 사직서를 내고는, 정작 사직 처리되니 안 나가겠다고 발뺌하는 ‘찌질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창피했다. 그러나 농락당했다는 것을 해명할 방법이 없었다. 한강 다리로 갔다. 서초동에서 멀지 않았다. 
   
다리에서 한강 물을 바라보았다. 엄마 얼굴. 내가 입대하던 날에, 엄마는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몇 시간이고 앉아서 울었다. 오랜 후에 아버지가 알려주어서 알았다. 엄마는 평생 공장에서 일했다. 하루 종일 무거운 물건을 들어서 옮겼다. 지금도 허리와 다리가 안 좋다. 엄마는 한글도 잘 몰랐다. 그러나...
류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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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학생들과 생활하다 교수가 되었어요. 교사 시절 급훈은 '웃자'와 '여유'. 20년 교수 생활 내내 학내 부조리와 싸우다 5년간 부당 해고, 파면, 해임되었다 복직 되었어요. 덕분에 정신과 치료, 교권 확립, 학교 상대 나홀로 소송의 노하우를 선물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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